'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라는 얄궂은 등식이 왜 성립 되는지 자식을 키워 보니까 알겠다.
자식에게 왜 져 주어야만 하는지.....
부모를 이길수 밖에 없는 이유도.....
아들 녀석이 휴학 한다는 소리를 귓등으로 듣고 흘려 버린게 실수였다.
강력하게 반대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나 부모가 반대하면 들을 줄 알고 있었던 게 더 큰 착각이었다.
2년전 딸아이가 휴학 한다고 선언을 했을때도 난 설마 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자기 자신이 싫어서...........라고 한다.
형체도 알수없고 정체도 모르는 뜬구름 같은 명분으로 부모에게 압력을 가했다.
언뜻 들으면 호강에 받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불과 했다.
온 식구가 나서서 말렸지만 나날이 이상하게 변질되어가는 딸 아이에게 우리는 백기를 들었다.
혹시라도 잘못 될까봐.....
자퇴할까봐 겁이났고, 가출 할까봐 불안했었고,나쁜 맘 먹을까봐 전전긍긍 했었다.
이길 방법은 아예 존재 하지도 않는 --승부가 뻔한 게임이었다
문득,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나의 약점을 쥐고 있는자는 언제나 나의 지배자 일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이미 부모의 약점을 다 꿰뚫고 있었고,
그래서 맘놓고 승자의 행세를 하려고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어이 일년을 유유작작 지 할짓 다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벗겨 먹었다.
유럽 배낭여행으로, 봉사활동으로,수재민 돕기,독거노인 간병, 호스피스 교육...
비교적 나름대로는 알차게 보냈다고 자부 하면서 제 자리로 돌아왔었다.
이번엔 아들녀석이 입대를 7개월이나 남겨두고 도중하차를 하는거였다.
이유가 또 맹랑하게도 우리 속을 뒤집었다.
공부도 안되고....하기도 싫고.....그래서 성적도 바닥이었다고....
비교적 단순한 녀석이라고 생각했기에 은근히 말려 보았지만 이번만큼은 꿈적도 않는다.
'너를 이해한다'..'니 맘 안다'....'오죽허면 그러겠니?'---그러나 벽이었다.
평소에는 피동적이고 어눌한 녀석이라고 얕게 보아버린 에미의 착각에 소금을 뿌린 거였다.
딸애에게 받은 충격이 채 가시도 전에 아들 녀석이 바톤을 이어 받았다.
물론 입대하기전에 쉬는게 큰일은 아니지만 가정 여건상 쉬는게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남편은 항상 입버릇 처럼 애들에게 말한다.
"내가 아직은 니들 뒤 봐줄 능력은 되니까 모든걸 지금 다 해 둬라...나중엔 힘들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은 현실감각에 더듬이 들이밀 생각을 안한다.
옛말에도 '사람죽는줄 모르고 팥죽 들어오는것만 생각한다'고 했는데
부모맘 헤아리기전에 지들 욕심만 차리는것 같아서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집안 분위기가 숨통을 죄었다.
이미 결정난걸 가지고 길게 실갱이 할 필요도 없고
아들녀석의 기분도 풀어줘야 할것 같아서 슬며시 농을 걸었다
"아들아...니 입대하면 고무신 거꾸로 신을 사람있냐?"
평소에는 죽어라고 눈치 없던 녀석이 그제서야 실실 웃는다.
"왜 없어요?.....엄마....줄을 얼마나 길게 서 있는데요"
녀석은 그래도 두쪽 달고 있다고 사내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려..다행이다......지발 니가 줄서는 기막힌 짓은 하지마라"
그래서 웃고 말았다.
부모를 달래고 웃겨도 시원 찮은데
아들 달래려고 어릿 광대짓을 해야 하는 에미맘을 개미 눈물 만큼이라도 알아라....이 자슥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