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의 먼족 되시는 분을 오랜만에 찾아 뵈었다.
꽤 오래전에 뵈었던 분이었기에 첫눈에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많이 수척하셨다.
세월의 한파 때문이 아닌 맘고생과 힘듦에 의해서........
"애들은 다 컸는가?"
먼저 아이들의 안부부터 챙기시는데...
우리 애들의 근황을 일일이 말씀드리니까 첫 마디가 '고생을 안 시켰구먼..'
뜨악해서 쳐다보니 아주 깊은 사연을 가지고 입을 떼셨다.
7남매를 남 부럽지 않게 키웠단다.
많은 재산은 아니지만 아이들 근사할 정도는 되었기에 모두를 힘들고 어렵게 살던 시대에
그래도 시골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학교도 마쳐 주었고
짝지워서 결혼도 시켰는데...하나같이 평탄치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발바닥에 흙 안 묻히고 화초처럼 키운 달랑 하나 뿐인 아들 녀석이란다.
학교 다닐때에 수석 자리 놓치지 않았고 졸업후에는 대기업에 취직을 했는데,
며칠 못가서 그만두고 또 자리를 잡는가 싶었지만 역시 그자리를 부지 못했다.
성장할때 어렵고 힘든일 눈꼽만치도 겪은일 없었기 때문에
사회에서 겪어야 할 당연한 부대낌을 견딜수가 없었다는 거였다.
그러기를 몇차례 거듭 하더니 사업이랍시고 벌린게 번번이 실패였고....
있는재산 숱하게 날리면서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로 마흔을 훌쩍 넘었단다.
아들하고 같이 입사했던 아들 친구들은 벌써 중견의 간부로 자리 바꿈한걸 생각하면
부럽고 안타깝고 분한 마음에 아들녀석을 패 죽이고 싶었다고 하신다.
고생 안 시키고 키운게 살을 떼어 내고 싶을 만큼 후회스럽다고 한숨을 토해 내셨다.
문득 내 아이들을 더 올리니까 얼굴이 화끈 거렸다.
요즘은 모든 애들이 공주 같이 왕자같이 부모 위에 군림(?)하면서 큰다
시대적으로 고생할 시대도 아니지만 산아제한이 가져온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내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무렵에 솔직히 난 극성에 가까웠다.
7년전란(임진왜란)의 주모자 토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는 그가 모시던 오도 노부가야를 위해서
그의 신발을 품에 품었다가 체온으로 데워서 신겨보낸 충정으로 천하를 손아귀에 쥘수 있었지만,
난 그냥 에미된 맘으로 겨울이면 발 시려울까봐 드라이기로 신발 데워서 신겨 보냈고,
점심은 꼭 제시간에 마추어서 따끈하게 먹도록 날라다 바쳤다.
아이들을 혼자 놀도록 하지않고 항상 내곁에 붙혀놓고 같이 놀아 주었고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거의가 집에서 아이들을 기다려 주어야 했다.
시장 갈때나 외출시에는 으레히 데리고 다녀야 맘이 놓였었다.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수 없을 정도로...
그래서 내 아이들이 -아들녀석은 특히- 아직까지 유약하고 피동적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젊은 엄마들 애들 떼어놓고 밖으로 돌아다니는걸 보면 한편 부럽기도하고
또 한편은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물론 내 잣대지만....
나중에 내 아이들을 잘못 키웠다고 후회할 일이 생길까봐 서서히 걱정해야 되는거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