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한다.
뿔이나고 발톱이 사나워서 또는 이빨이 날카로워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닌데..
이성이 없고 감성만 가진 동물이 덜 무섭다는거다.
그런데,
더 무서운건 남을 의심하는 불신병이다.
설연휴가 막 끝나고 딸애가 꼭두새벽에 일어나더니 가야 한다고 난리다.
밖은 아직 어둠이 씻기지도 않은 7시가 채 되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당직이어서 기차역 까지 데려다 줄수도 없는 이른 새벽에...
다행이 택시라도 있으면 다행인데...
기차출발시간 10여분을 남겨놓고 부랴부랴 택시 승강장으로 갔으나 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이차를 놓치면 하루를 더 머물러야 하는데...
딸애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엄마 어떡해요.......어떡해...'
약속이 있어서 오늘 꼭 가야 한다고 안절부절 못한다.
그때 어디선가 구세주가 서서히 나타났다.
까만 그렌즈 승용차가 다가오길래 무조건 염치불구하고 손을 들었다.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차앞을 가로 막고 죽는 시늉을 했다.
의외로 차는 세워졌고 문이 열리더니 무슨일 이냐고 묻는다.
여차저차 머리 조아리며 사정을 했더니 두말 않고 타라고 해서 태워 보냈다.
차가 출발 하면서 차 넘버는 머릿속에 꼭꼭 쑤셔 넣었다.
워낙 험한 세상이라서...
그런데 도착했을 시간이 됨직해서 딸애에게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연거푸 해도 사서함으로 넣어라는 소리만 뱅뱅돌고...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기차역 까지 따라 갈건데.....이런 실수가...
어쩌자고 겁도없이 처음보는 차안에 천금같은 딸애를 덜컥 밀어 넣었을까....
차츰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설마.....
그 운전자 얼굴 기억해 두지 않은게 후회막급이었다.
차 넘버도 퍼떡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걸 어쩌나..........만일 무슨일이라도 있으면...
방정맞은 생각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미칠것 같았다.
가슴이 덜덜 떨리고 진정이 안된다.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20여분을 보내고 나니까 딸애가 전화를 했다.
지금 기차타고 가는중이라고.......
그 고마운 아저씨에게 백배 인사 했으니 안심 하시라고.......
짐을 들고 있어서 전화를 받을수가 없었다고.....
아.......
이런 죄인이........
난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지만 부끄럽고 죄스러워서 고개를 들수 없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은인을 악한으로 치부했던 그 순간이 미치도록 챙피했다.
아무리 믿을넘 없는 세상이라지만.....
믿고 살고 싶은 세상이 언제쯤이면 우리들을 편하게 생각케 해 줄지....
죄지은 아침에......
머리 조아리며 하루종일 근신하는 맘으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