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나 이제 백수 아냐...."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남동생의 자신에 찬 소리를 들으니까 왈칵 눈물이 솟았다.
얼마만에 듣는 낭보인가...
백수생활 數年만에 처음으로 동생노릇 할려고 제일 먼저 나에게 연락을 해 왔다.
IMF가 몰고 온 회오리는 우리 친정을 비껴 가지를 않았다.
그당시 잘 나가던 사업체를 경영하던 작은 오라버님이 7억의 부도를 맞고 말았다.
수표를 막을 돈 줄은 있는대로 다 끊기고 최후의 보루인 형제들에게 손을 내민 피붙이를
우리는 외면할 자신이 없었다.
동생돈 형님 돈..부모님돈...
그래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고 단 한개의 물건이라도 건질 요량으로 오라버님은 발버둥을 쳤었다.
돈 줄이 한계에 이르러서 최후로 생각해 낸게 공직에 있는 남동생의 재직 증명서가 첨부된 보증서..
남동생은 우리 형제들과 상의 한마디 없이 덜컥 보증을 서 주었고
결국은 그 올가미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채 옷을 벗고 말았다.
아직도 아버님은 이 사실을 모르신다.
아마 아시면 그날로 세상 하직하실 성격이시다.
그 여파는 엄청난 기세로 친정을 집어 삼킬듯이 달려 들었다.
교직에 계신 맏 오라버님의 봉급이 송두리째 날라가도 하소연 할수도 없었고
'설마'로 반신반의 하며 내준 우리 형제들의 피같은 돈이 그대로 공중 분산 되었다.
급기야 작은 오라버니는 부모 형제들과 발을 끊은채 생사조차도 알려오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시는 아버님은 불효 막심한 놈이라고 펄펄 뛰시고
남동생에게는 언제 승진 하냐고 캐 물으셨단다.
회오리 속에서 가장 힘들게 보낸게 남동생이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대학 졸업장은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했고
퇴직금 조차도 구경할수 없었던 막막함이 동생의 전신을 압착기로 눌러 버리는것 같았다.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해 줄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죽은 아빠...무능한 남편....
난 가슴이 굵은 소금 뿌린것 보다도 더 아리고 아팠다.
유난히 애착이 갔던 동생이었고
기대가 컸던 동생이었기에 그만큼 받은 아픔도 남 달랐다.
훤칠한 키에 명석한 두뇌 뼈없이 원만한 성격..그리고 개그맨을 능가하는 유머..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잘못 되었길래...
그 동생이 얼마전에 '공인중계사' 자격증을 땄다
(남들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는 거였다.
불과 넉달 공부하고 합격하고 보니 웃음이 나오더라는 얘기를 듣고 한마디 쥐어 박았다.
"이 자슥아...그 정신으로 공부했으면 서울대학도 갔을거 아이가?"
그러자 동생말이 걸작이다.
"에이 누나..내 팔자가 요 모양이면 판검사 되었어도 옷 벗기는 마찬 가지야"
만사를 웃음으로 답하고 절망의 끄트머리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동생이 기특했다.
로또복권 당첨되면 제일먼저 누나에게 줄거라고 은근히 체면 세워주는 그 동생이
얼마전에 사무실 냈다고 제일 먼저 알려왔다.
"누나...좋은일이나 나쁜일 아쉬운게 있을때는 누나밖에는 생각안나..."
또한번 내 눈시울을 달군 그 녀석이 이젠 보고싶어진다.
마흔 하고도 다섯해를 산 그 녀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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