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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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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나들이


BY 蓮堂 2004-06-29

 

이른 아침,
잠시 다녀 가라는 친정 어머님의 전화를 받고보니 알수 없는 불안감이 손끝을 떨리게 했다.
이른  아침의 전화나 심야에 걸려오는 전화는 거의가 悲報다.
그래서 벨이 울리는 순간의 짧은 상상은 억겁의 무게로 가슴을 누른다.

연로하신 친정 부모님이 계시기에 눈과 귀는 밤낮으로 열려 있어야 했다.
출가외인이라는 이기적인 명분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별 흉이되지 않는 우리네 가족제도이다.
시집이 우선이고 친정은 차선으로 밀려나도 변변한 항의조차도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지금은 많이 달라져 가고 있지만....

두분이 계시기엔 필요이상으로 큰 집은 가녀린 부모님 숨소리마저 다 빨아 들였고,
가을 걷이가 끝난 울안의 채마밭은 미처 손보지 못한 추수 후유증이 사람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댓돌위에 덩그렇게 놓인 두분의 흙묻은 신발만이 사람의 흔적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사흘이 멀다하고 들락거리는 오라버님 내외의 효성스러운 자취가 물씬 묻어 나와서
그 나마도 을씨년 스러운 분위기를 다소 따스하게 데워 주어서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여든을 넘기신 아버님의 거동은 어머님의 부축없이는 나들이가 불가능 하시다.
나날이 쇠약해 가시는 두분의 깊이 패인 주름살은 삶의 고단함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모시고 살려는오라버님 내외의 끈질긴 설득도 아버님의 고집엔 속수무책이었다.

촛점잃은 아버님의 눈동자는 그 옛날 서릿발 같은 차거움을 잃어 버리셨고
떠나가야 할 길이 왜 이렇게도 더딘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희미하게 웃으신다.
나의 두손은 모아쥐고 계신 꺼칠한 아버님의 손바닥은 아직도 온기로 따스했지만
내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회한은 시베리아 벌판 같이 혹독했다.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있는 내 얼굴이 혹여라도 기억밖으로 밀려 날세라 뚫어질듯 바라보신다.
"내가 떠나기 전에 또 올거지?.....이제....몇번이나 볼련지...."
난,
그냥 소리내어  울수 있는 딸 일수 밖엔 없었다.
당신의 어금니 보다도 더 아끼고 사랑하는 당신의 맏딸이....

이 불효를..딸이라는 이름으로...출가외인이라는 핑게로....

잡은 손 차마 떨치지 못하고 오래도록 그렇게 웅크리고 앉아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운건 어머님이셨다.
"그만 가거라..해 떨어지면 김서방 운전하기 힘들다."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던 남편은 자고 갈 뜻을 비치자 어머님은 기겁을 하신다.
불편하시단다....사위가 같이 자는건...
아마 우리내외가 불편할까봐 미리 말둑을  박고 계시는것 같다.

어머님의 완고함으로 결국은 등 떼밀려서 일어 섰지만 눈은 아버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한번만 더 올래?.....가기전에....."
아버님은 천근의 내 가슴위에 또하나의 바윗돌을 얹어 놓으셨다.
"네...아버지...자주자주 올께요....자주자주요...."
'자주자주'가 아니고 '가끔'이라도 뵐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만 있다면...
일년에 서너번이 단 스무번만 될수 있다면...

어머님은 춥다는 핑게를 대시면서 방안에서 우리들의 인사를 받으신다.
아마 두분만이 남겨지신 서글픈 모습 우리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신거다.
아니..돌아가는 자식의 모습 안보시고 싶은거다.

대문밖을 벗어나서 뒤를 돌아 보았다.
그런데...
닫혀진 대문 사이로 어머님의 흙묻은 신발이 어른 거렸다.
추워서 내다보지 않으시겠다던 엄마는  돌아가는 우리를 몰래 지켜보고 계신 거였다.

아....엄마.....

돌아오는 차안은 내 눈물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남편 : 자네를 데려온 내가 죽일놈 같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