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딸애의 자지러지는 듯한 전화를 받았다.
"어...엄마.....어...어떡해요....무서워.."
머리 꼬랑지 다 잘라먹고 다급하게 더듬는 딸애의 목소리에 신경이 곧추 서는것 같았다.
짧은 순간..무슨일이 일어 났음을 직감했다.
강도??....사고??.......아니면?......
왠만해서는 경거망동이나 실수를 하지 않는 차분한 성격의 딸애가 비명을 지르며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무...무슨 ...무슨 일이냐?"
뒤따라 나올 대답이 두려워서 딸애에게 뒤질세라 나도 같이 더듬고 있었다.
"어..엄마......밥을 할려고....그랬는데..."
이녀석의 사설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긴지 갈수기의 논바닥 같이 목이 타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뭐가 잘못 되었는데?"
내 언성이 차츰 고음을 타고 있었고 머릿속에는 정돈 안된 필름이 요란을 떨고 있었다.
"그런데요...쌀이 막 움직여서......."
이 무슨 환타지 같은 소설을 쓰고 있는거냐.
차츰 손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것 같았다.
"벌레 같은게 쌀속에 숨었다가.....엄마 어떡해요...난 몰라아~~~."
순간 꼿꼿하게 각을 세웠던 신경줄이 느슨해 지면서 안도감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야,,이녀석아..쌀 벌레가 깨무냐??잡아묵냐?"
아이고......가심이야....세상에.....
니가 교장이면 머 하냐?...쌀 벌레보고 숨넘어 가는 소리 하는넘이...
막상 딸애를 나무라고 나니 문득 결혼초에 시어머님께 타박 맞은게 생각났다.
된장독에 꼬물 거리던 구더기를 보고 기절 초풍을 한건 물론이고
그 된장을 보기만 하면 구역질이나서 일년내내 된장 찌게를 먹지 못했다.
그런데 그 구더기를 손으로 여유있게 손으로 집어 내시면서 하신다는 말씀이
"야야!.이 구더기가 깨무냐..잡아묵냐??"
난 경이롭고 존경스러운 눈으로 시어머님을 쳐다 볼수밖엔...
며칠전에 딸애에게 가서 난 시어머님의 흉내를 내야 했다.
쌀속에 고물 거리는 벌레를 보니까 속이 메스꺼웠다.
생각 같아서는 일회용 장갑을 끼고 싶었지만 딸애에게 체면을 세워야 했기에
맨손으로 벌레를 집어 내면서 속에는 찬물과 끓는 물이 뒤죽박죽 되어서 울컥 거렸다.
옆에서 인상을 있는대로 다 오무리며 '엄마야~~'를 외치며 지켜보던 딸애는
나를 아주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는거 였다.
그 눈은 존경과 경이로움이 아니고 땅군이 뱀 만지는 모양을 지켜보는 시선 같았다.
"어..엄마.....세상에....안 무서워요?"
야 이 자슥아..엄마도 여잔디...어째 안 무서워..아니 징그럽지........
그렇지만,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해야 했기에
이 벌레 뿐만 아니고 맹수라고 해도 너를 위해서는 달려 들었을거다.
"머가 무서워??.........고물고물 귀엽구먼....."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난 용감을 떨어야 했다.
(얼마전에 바퀴벌레 보고 놀라서 며칠을 머리 앓은 사실을 딸애는 모린다..ㅎㅎㅎ)
멀찍이서 지켜 보던 남편이라는 사람이 한다는 소리가..
"큰 짐승이 작은 짐승 하나 가지고..ㅉㅉㅉ....궁상 떨지 말고 갖다 버려!"
시주는 못할망정 쪽박은 왜 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