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의 원뜻이 뭔지는 모른다. 다만 세간에 굴러다니고 있는 뜻은 알듯도 하다. '학부형이 선생님께 갖다 바치는 돈...'이라고 해야하나...... 한국 형사 정책 연구원이 조사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에 서울사는 초,중고 학부모 727명을 상대로 방문 조사해보니 촌지를 드린 금액이 학부모 한명당 14만여원이 된다고한다. 조사대상 중에 절반이상이 주었다고 하고, 그 시기는 스승의날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촌지를 건내줄때의 반응은 거절한 사람이 절반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촌지를 건네고 난 뒤의 학생에 대한 관심도는 40%이상이 높아졌다고 하니 학부모와 교사는 공생관계가 이루어 지고 있다고 하면 심한 표현일까... 나의 맏 오라버님도 시골학교의 首長으로 재직중이시기에 이런말이 메스컴에 오르내릴때면 심기가 편칠 못하다. 비록 부분 매도이지만 전체를 보는 시각이 곱지 않은게 여간 껄끄러운게 아니다 좀 오래된 평교사 시절의 맏오라버님의 일화가 생각난다. 광산촌 초등학교에 재직중이시던 - 학교 규모가 제법큰 - 그래서 돈도 흔했던 시골 학교에 그당시로는 이해가 안될 정도로 치맛바람이 심했다 오라버님이 담임을 맡고 얼마되지 않아서 소위 지방유지라고 목에 힘주며 거리를 쓸고 다니던 사모님들의 봉투 행렬이 시작되었다. 아버님의 대쪽같은 성품을 빼다 닮은 오라버님의 심사가 틀어진건 당연했다. 그러나, 봉투를 주는대로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이 덥석덥석 받아 쥐었단다. 겉봉투에 이름을 적어가며....... 그리고 한달이 지난뒤에 그 돈의 이름이 적힌 학생들의 학급 통장에 고스란히 입금을 시켰단다. 소문이 나자 오라버님에게는 그 이후로 단 한푼의 촌지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소풍가는날, 교사의 점심도시락은 반장이 싸오는게 관례(?)가 되어있었지만 학부모들에 의해 괘씸죄에 걸린 오라버님의 도시락은 아무도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옆의 반 교사의 도시락을 얻어 먹는 헤프닝까지 감수하셨지만 아직까지 그시절을 회상하시면서 혼탁해진 촌지풍조를 개탄 하셨다. 내 아이가 초등학교에 처음으로 입학 하던날, 신신당부 하시던게 잊혀지지않는다. 학교는 될수있음 가지말라, 다만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때는 언제든지 방문해서 상담을해라, 돈은 절대로 건네지 말라___그건 스승의 자존심을 죽이는 뇌물이다. 그리고 자식의 앞날에 칼날을 들이대는 미친 짓이다. 내 초등학교 시절에(우리형제들 모두 다) 우리 아버님은 딱 세번 학교에 가셨다. 입학식때,중학교 원서 쓸때,그리고 졸업식때. (가을운동회날도 가끔은 가셨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 그런 부모님이 많이 원망 스러웠었다. 어떤 친구는 엄마가 수업시간중에 앞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시험지 한뭉치를 갖다놓으며 자식의 어깨를 올려준게 여간 부러운게 아니었다. 학교재정이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였기에 그 한다발의 시험지 뭉치는 위력이 대단해서 그 친구의 기를 충분히 살리고도 남았다. 청소를 안해도 이름이 적히지 않았고 화장실가서 놀다가 들어와도 나무라지도 않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싸움을해도 잘못을 했건만 벌을서는건 엉뚱하게도 피해를 당한 친구였다. 예나 지금이나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 오죽하면 개도 돈있으면 '멍첨지'라고 하지않는가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고했건만 정승같이 벌면 개같이 쓰고 있으니 과연 돈은 毒인가..... 필요의 수단으로 쓰면 좋으련만 목적의 수단으로 쓰고 있으니....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그의 저서 '전쟁과 평화'에서 "아,아,돈!돈! 이 돈때문에 얼마나 많은 슬픔들이 이 세상을 젖게 하는가" 하고 깊은 탄식을 토했다고 한다. 어떤 학부모에게 물었다.(물론 모자이크 처리가 된) 왜 촌지를 건네야 하냐고...... 그랬더니 한다는소리가, '내 귀한 자식이 불모로 잡혀 있는데 잘 보여야 아이가 편할게 아니냐'고.... 참으로 뒤로 까무라치고도 남을 소리를 거침없이 했다. 불모로 잡혀있다?????? 귀한 자식을 책임지고 있는 교사도 역시 학부형이다. 돈 몇푼으로 자식 앞가림하려는 어리석음이 이젠 머언 '전설의 고향'이 될려면 얼마나 더 긴 시간이 필요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