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어둠이 씻기지 않은 6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
밤새 옆에 자고 있던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 갔으려니 했는데....
거실에서 전화 번호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20년된 무선 전화기라서 번호 찍는 소리가 난다)
속으로 헤아려 보니 일곱자리 숫자인걸 보니 폰은 아니고...
그러면 일반 전화인데...
아이들은 모두 폰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 시간에 아이들에게 한 건 아닐거고...
그럼???.......어디에 거는걸까...
고약한 의심이 슬며시 드는데...
연거푸 두들기는 소리가 나는걸 보니 뭔가 다급한것 같았다.
그런데 이 양반이 현관 밖으로 슬며시 나가더니 연거푸 두들기는 소리가 나도록 신경을 긁었지만
치사하게 도청하기는 싫었다.
자는척 누워 있으려니까 슬며시 들어오더니 신문들고 화장실에 가는 거였다.
내가 꿈을 꿨나??
아닌데..아직은 그럴 나이는 아닌데....
남편 아닌 내 스스로를 의심하고 싶었다...내가 뭔가 착각을 했겠지..
혼자서 뒤척이면서 온갖 망상을 다했지만 결론은 한가지...
그래..까짓거 확인 한번 해 보자.
살며시 전화기를 가지고 베란다로 나갔다
재 다이얼을 누르니까 신호 가는 소리가 났는데...
"여보세요....."
순간....난 까무라 치는줄 알았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소리는 갓 잡아올린 싱싱한 물고기가 퍼덕거리는듯한
탄력있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게 아닌가...
"여보세요....말씀 하세요....."
난 더이상 말씀을 못하고 그냥 끊고 말았다.
이럴때 머리 뚜껑이 열린다고 표현 하든가...
도대체...이 아침에....여자에게....
그러나 침착하자....그러나 자꾸만 속이 끓는다
에이..아니겠지...설마...여자라고는 나하고 딸애 밖엔 모른다는데...
그러고 보니 평소에 미심쩍었던게 필름 돌아가는 소리를 냈다.
내가 전화를 받으니까 그ㅡ냥 끊었던 이상한 전화.
차를 타고 가는데 걸려오는 전화를 받던 남편은 잘못 걸렸다고 하면서 끊었지....
폰을 받을려니까 한사코 자기가 받는다며 슬며시 자리를 뜬적이 있었지....
그래,
이쯤에서 양파겁질 벗기듯이 모든걸 확 벗겨 버려야돼.
암 코양이 화나면 어떤가를 보여 줘야돼.
지금 헤어지면 난 영전이지 뭐.....
온갖 시나리오를 써대며 아침상을 차리는둥 마는둥 했지만 끝내 어디다가 전화를 했는가는
묻지 않았다.
스스로 불기는 애초에 틀린것 같았지만 한가닥 양심에 맡기기로 했다.
밥을 우겨넣는 남편의 양볼을 밥주걱으로 패주고 싶었고
물마시는 컵을 그대로 면상에 퍼붓고 싶었다.
내내 벌레 씹은 인상을 펴지 못하는 내 표정을 보더니 어디 아프냐고 묻는다
그래..아프다...아파서 죽을 지경이다
내가 죽으면 화장실가서 '이쁜년'이라고 입이 째지게 좋아하겠지.
안방 장롱 돌려 놓으며 내 앞으로 들어놓은 보험금 액수 헤아리겠지...
남편은 끝내 이실직고를 하지 않고 출근해 버렸다.
무성의한 배웅을 하고 나니 와락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럴수가....
언제부터 일까...어떤 여자이길래...
난 여태껏 그래도 남편에게 인정받는 아내로 살아왔다고 자부 하는데....
온몸에 뚫려있는 땀구멍이 몽땅 막혀 버린것 같았다.
오늘 하루는 모든일 접어버리고 다음 시나리오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까 잊어 버리고 왔는데 말야..자네 야구르트 대리점에 전화를 좀 해주게
아침에 전화를 하니까 안받아서 얘기를 못했는데..."
머?????????????????
"지금 설사가 나서 당분간 야구르트 못먹으니까 연락 하거든 다시 갖고 오라고...
오늘것 가지고 오지 말았어야 하는데...."
난 부리나케 현관 밖으로 나갔다
바깥 문고리에는 모 유산균 대리점이 걸어놓은 가방이 걸려있었고
그 가방속엔 야구르트와 함께 계산서가 들어있었다.
남편은 가방겉에 적힌 전화번호 재 확인차 밖으로 나갔던 것이었고.....
아.........내가 쥑일 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