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죽지에 내려꽂히던 땡볕. 그 치열한 몸놀림을, 지난 계절 동안 보이는데만 신경쓰느라 분주했던 존재들. 윤기나는 머리카락처럼 찰랑대던 여름흔적들을 한 개씩 지우노라면 코스모스 물결같은 그리움이 뚝뚝 떨어진다.
내 가난한 울안에 소슬한 기운이 내려 앉는다. 단감은 하루가 다르게 주황색 분칠을 하느라 거울을 아주 들고 있는것 처럼 보인다. 모과는 비록 밉게 생겼지만 사람들에게 아주 귀한 선물을 주기 위해 짧은 가을햇빛을 얼굴에 받느라 분주하다.
봄은 여자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한다지만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가을은 마음의 여백을 늘리라고 가르친다. 강렬한 여름 존재들로 인한 무거운 기억들을 가뿐하게 비우지 않고선, 가을만이 줄수 있는 은헤로운 것들을 담지 못 하리라.
고통으로 밤잠을 설치던 여름 흔적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말자. 나도 긴 방황에서 돌아와 누더기를 벗으리.
폴짝폴짝 뛰는 햇살과 입 맞추며 두 팔 벌려 가득 채우리라. 사랑으로 열매 맺음에 감사드리리라.
저 들녁을 보라! 비록 내 것이 아니라 해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 잘 익은 곡식을 곳간에 채우는 농부의 마음도 이때 만큼은 고단함을 잊을 수 있는 것이다.
가을은 스스로 완성하는 계절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느로는 새로운 탄생과 출발을 준비하는 게절이기도하여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쌀 한톨의 의미, 호박 한덩이를 건네주는 마음을 음미하면서 가슴속에 무엇인가 하나쯤 챙겨 담아야 한다.
통통하게 알곡을 익혀내고 영혼을 살지우는 소리에 부자가 되는 때이다. 힘들었던 고통따윈 기억하기 싫다.
농부의 조그만 땀방울에서 부터 신의 거대한 섭리에 이르기까지 힘들고 어려웠던 것들에서 행복의 열매가, 시련으로 다져진 행복이 더욱 소중한 것 처럼, 모든 열매 맺음에 고개숙여 감사드린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여기까지 온것도 모르는 수많은 땀 방울들과 또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모든것을 완성시키는 이 계절. 발걸음을 세듯 천천히 걸으며 잊혀진 이들에게 쪽지 한장 건내주고 싶다. 낙엽을 밟으며 아름다운 반란을 일으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