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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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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에 두고온 것들, 유년의 꿈 조각


BY 씀바귀 2005-08-17

밤이면 울타라에 하얀 박꽃이, 마당에 멍석을 펼치면 달

님이 먼저 와서 앉았다. 절반쯤 마른 쑥과 풀로 모깃불을

피워놓고 밤 깊은 줄도 잊은체 이야기를 하는 어른들.

온 종일 뛰노느라 지친 아이는 잠에 빠져들어 별님의 이

야기를 듣곤 하였다. 

여름밤은 아름다운 추억들이 몇개씩 쌓여가며 깊어간다.

유년의 여름날은 방학이라는 큰 선물이 마냥 신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방학은 시작되었지만 딱이 갈곳도 없어서 지루한

나날을 보내기란 정말 고역(?)이었다.갈만한 친척집도

 없는 집안이라고 궁시렁 거리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

었으니 맨날 노는것이 일이다.

 

가끔 논에서 일하시는 아버지한테 주조장에서 사온 막걸

리 한병을 가져다드리는 날이 있는데, 어느 논속에서 뜸

부기가 뜸북뜸북하고 우는 소리가 들리면 그 쪽 논을 향

해 가다가 논속에 발이 빠지기도 하였다.

 

농수로에서 멱감는 사내아이들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웠

다. 그런 속에는 여자아이도 있었다. 즈그들끼리 시합을

한다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품새에 박수를 치는 아이들.

어서 하라며 부추기는 아이들. 농수로는 한동안 시끌벅적

하였다.

키가 너무 커서 우듬지까지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한 포

플러나무가 서 있는 시냇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아저씨들

을 구경하는 즐거움도 솔찮했다.

 

또 동무들과 풀밭을 뛰어다니는것도 재미있었다.

키보다 더 자란 풀들이 저마다의 향기를 내뿜으며 기다

렸다는듯이 손을 내민다. 말이 좋아 식물채집이지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고무신 한 짝이 벗겨지는줄도 몰랐다.

 

동네에서 꽤 멀리 떨어진 마을이나 야산을 찾아가느라

뛰거나 걷다보면 아침에 입은 옷이 땀에 흠뻑 젖는다. 머

리는 뛰는대로 다팔거린다. 종아리는 풀잎에  생채기가 나기 일쑤.

풀밭에 다니면 뱀에 물린다고 어른들이 말리시지만 항상 하는 소리라며 흘려듣곤 하였다.

 

어쩌다 남의 밭두렁을 지날때면 멀쩡한 옥수수대를 부러뜨려 별로 달지도 않는 단물을 쪽쪽거렸다.

운좋게(?)단수수가 있으면 신이 난다. 발로 몇번 툭특차면 어느정도 껶여지는데 껍질을 벗겨내고 씹으면 아삭아삭소리가 나면서 단물이 나온다.

주인이 오기전에 흔적을 없애는것도 먹는것못지 않게 중요하였다.

 

그러니 방학숙제는 시늉뿐으로 며칠씩 미뤄진 일기를 쓴다는 건 난처한 일이었다.

 

 세월의 이끼는 자꾸 끼어들지만 어린날 철없이 뛰놀던 풀밭.  지금도  풀 향기가 스며온다.  다시는 갈수 없는 그 시절.

그러기에 사람들은 추억을 먹고 사는것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