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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만 한곳이 어디 있으랴.


BY 수련 2008-04-10

 

 

 

보름 만에 돌아온 내 집이 참 정겹다.
베란다의 제랴늄은 주인이 없어 물을 한동안 받아 마시지 못해도
세 가지 색깔의 꽃을  한껏 피워내어
내 눈과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어 그저 고맙고 고맙다.
비어있어 삭막할 것 같았던 집이 꽃 몇 송이가 이렇게 따뜻하게 만들다니.
 
대강 짐을 부려놓고 걸레를 찾아 청소막대기에 끼워 마루, 이방 저방 다니며
실실 닦았다. 비워놓아도 먼지는 내려앉나보다. 걸레를 앞뒤로 갈아끼워
온 집안을 대충 청소하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31평!
실평수 25.7평, 102 평방미터...
남편과 둘이 살기에는 꼭 적당하다.
아이들이 와도 넉넉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다.
5년전에 지은 아파트라 베란다의 폭이 넓어 화분을 놓고, 러닝머신을 놓고
쇼파 하나를 놓아도 비좁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제사가 많은 우리 집 부엌살림도 따로 찬장이 없어도 싱크대 안에 모든 그릇들이 다 들어간다.
 
원래 붙박이가 되어있는 거실 쪽 찬장 안에는
우리 가족들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어
언제라도 눈길을 주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분당에 있는 딸애 집은 22평 전세 아파트다.
남편의 병원치료 때문에 딸애집에 머무는데 말이 22평이지 복도식이라
방 하나는 창문도 제대로 열수가 없고
안방은 딸아이 침대와 장롱만으로도 꽉 차 답답하다.
마루는 길쭉한 대신에 폭이 좁아 남편이 자는 라꾸라꾸를 놓고 그 앞에 앉아
TV를 보면 뒤로 갈데도 없는데 자꾸 엉덩이를 뒤로 밀게 된다.
뒤가 툭 튀어나온 구식 텔레비젼이 바로 눈앞에 있어서.
 
15년이 된 아파트라 베란다도 좁아 빨래나 널 수있는 공간으로밖에
사용이 안된다. 부엌 또한 폭이 좁아 둘이 서서 일을 하기에는 무리다.
'엄마 도와 주려했는데 비좁아서...' 딸의 핑계도 나무라지를 못한다.
 
아파트 값을 비교해 보자.
물론 지역의 차잇점이 있다. 우리 집은 지방이고 딸애 전세집은 분당이다.
(강남하고는 아예 비교도 안되니 시비를 걸지말자.)
31평 우리집을 파는 값과 분당의 22평 전세값과 맞먹는다.
600여평인 우리 밭과 ,31평 아파트를 팔아도 분당의 22평을 살수가 없단다.
 
한 동안 딸애 집에서 머무는 동안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다.
분당에 사는 사람들은 적은 평수에 살아도 아파트만  한 채만 있어도 부자다.
유치원 차에 아이를 태워보내면서 손을 흔드는 젊은 여자도 부자고,
허리가 꾸부정한 나이든 할머니도 다 부자로 보인다.
 
헬스, 수영장, 각종 운동시설이 갖추어진 건물에 목욕탕이 딸려있는데
한 달 이용료가 15만원이란다.
운동도 하고 목욕도 하면 크게 비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남편과 같이 하려니 두 배로 불어나는 액수에 주눅이 들어
운동은 돈 안드는 탄천을 걷기로하고 일주일에 두 번 목욕만 한다.
 
목욕탕에 가보면 대다수의 여자들은 운동을 하고 목욕탕에 들어오는데
그래서인지 배나온 여자는 나 뿐인 것 같았다. 어쩌면 그리도 다들 날씬한지..
비싼 아파트를 가진 사람들이라 다 경제적인 여유도 있나보다.
가까운 마트에도 가보면 여자들이 카트마다 넘치게 물건을 담아 계산대앞에서
바구니를 든 내 손이 지루하다 못해 도로 비워놓고 나가자고 채근을 하기도한다.
 
문화센터에서 만난 어떤 이가 어디 사냐고 물었다.
"J동이요"
"나도 거기 사는데. 탄천 윗 쪽이예요? 아래예요?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말했다.
"지리를 잘 몰라 그건 잘 모르겠고 ##아파트에 살아요"
"아하~ 그래요."
"무슨 아파트에 사세요?"
"아, 나는 아래쪽에 살아요"
집에 와서 딸아이에게 물었다.
"히히히 울 엄마 우짜꼬. 엄마는 서민아파트에 사는 것이고
그 잘난 아줌마는 엄마가 외우기 힘든 이름의 복합상가에 산다는거죠.
밤이 되면 꼭대기에 휘황찬란한 불빛이
보이는 그 곳"
 
밤이 되어 딸아이 아파트 복도에 나서서 아랫쪽을 보면
파라다이스를 방불케할 정도로 요란한 불빛에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는데.
경제가 어렵다고 누가 말했던가.
분당에 살아보니 경제는 하나도 어렵지 않던데.
 
한증탕속의 여자들의 대화에 나는 더 쪼그라들어 분당의 한 귀퉁이에
내 몰렸다.
"이번 선거는 누구 찍을거야?"
"이 명박정부가 세금을 적게 부과한다고 했으니 그쪽을 찍어야지"
"아이구 이 사람아.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데 세금 좀 더 내면 어때"
"무슨 소리야. 강남에 사는 우리친구는 노무현정부가
아파트값응 몇배나 올려줬다고 얼마나 좋아하더라고.
9억하는 아파트가 어느 날 자고나니 20억이 되었대.
노씨가 아파트값을 올려주고 이씨가 세금을 깍아준다고
이씨편으로 찍으라고 어제 전화 왔었어"
"히히히 맞네. 그렇다면 나도 생각을 다시 해봐야지."
 
작년에 분당에 전세를 얻을때 22평 아파트가 2억 조금 넘었었다.
지금은 4억 가까이 한단다. 말이 되는 소리냐고? 현실이다.
 
숨 막히는 딸애집에 있다가 우리 집에 오니 숨통이 트인다.
아파트를 나서면 바로 눈앞에 산이 보이고, 7층짜리 아파트이니 고개가 아프도록
올려다보지 않아도 하늘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마루에 누워서  괜스레 이리저리 둘러본다.
역시 우리 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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