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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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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혼인 전 날.


BY 수련 2006-05-12

결혼식 이틀 전에 대구에 사는 언니와 같이 서울로 갔다.

 

자식없이 혼자사는 언니는 아들이 태어날때 산 증인이다.

아들을 해산하러 친정에 갔을 때 마침 올케도 임신중이었고 한 지붕아래에서

아이를 두 명 낳지않는다며 올케가 부엌으로 방으로 다니면서 내내 툴툴 거리는 통에

엄마와 대구에 사는 언니집으로 가서 해산을 하였다. 우스운건 올케가 친정으로

해산을 하러 가면 될텐데 시누이인 나를 내 쫒은 격이 된것이다.할 수없이 엄마는나를 데리고

대구에 사는 언니집으로 갔고, 언니는 걱정말고 편하게 아이를 낳으라고 안방을 내 주었다.

한번도 임신을 해보지 못한 언니는 일주일 동안이나 진통을 하는 나를

 신기해 하며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장난스럽게 뱃속에 든 아들놈에게 말을 건네곤 했다.

"야 이노마야, 너거옴마 그만 괴롭히고 퍼뜩나오거라이. 이모한테 한대 맞아볼래?ㅋㅋ"

 

아들을 낳고 언니 집에서 한 달동안 몸조리까지 다했다.

그러니 아들에 대한 언니의 정은 남다를수 밖에.

그래서 이번에 시댁쪽 친척들에게 예단을 보낼때 언니에게도 이불 한채를

보내드렸다. 어찌나 좋아하든지....

 

엄마인 나보다 이모인 언니가 더 들떠서 하루 전날 가려는 나를 재촉해서 이틀전에 올라갔다. 달리 준비할 것도 없고 해서 언니와 남편과 아들의 신혼집을 구경하러 갔다.

아들에게 현관문 비밀번호를 전화로 물으니 엄마의 심한 건망증을 잘 아는지 말로하면

금방 잊어버린다고 문자로 보내준단다.

집에 들어서니 신혼냄새가 물컨 났다. 아직도 냄새가 가시지않은 가구들,전자제품, 씽크대 안에는

예쁜그릇들이 차곡차곡 쌓여있고, 예쁜 소품들도 자리를 잘 잡아 집안 분위기를 한층 더

신혼냄새를 붇돋았다.

 

며느리의 물건이 들어 온 이상 집안일은 일절 안하려했는데 아들의 빨래감이며 침대이불의 헝크러진 모습이 그냥 앉아있게 하지않았다. 그래 아직은 혼인 전이니까 ....

걸레를 들고 여기저기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걷어 쇼파에 편하게 앉아있는

남편에게 캐켜라고 던져주었다.

"어, 이사람이 뭐하는거야. 나보고 우짜라고."
"당신 아들이잖아요. 나는 저번에 여기 왔을 때 아들놈 빨래를 해주고는 더 이상 아들빨래는 손대지 않기로 했거든요.그러니

아빠인 당신이 아들 옷 좀 캐켜요"

"어,어 별 희한한 말을 다 듣겠네."

 

언니는 주방 뒤베란다에 있는 오곡주머니를 보더니 고추꼭지를 다 따고 팥이며 깨,콩을

꺼내어 냉동실에 다 넣어두고, 당신의 아들 집에 온 것 마냥 걸레를 들고 구석구석을 닦으며

좋아하셨다. 신혼여행 갔다와서 깨끗하면 얼마나 좋으냐면서..

 

언니는 청소를 다하고 설합도 열어보고 씽크대안을 들여다보며 그릇들이 예쁘다, 세탁기가

이상하게 생겼다는 둥, 둘이 살면서 냉장고는 왜 이리 크냐, 세워놓은 스팀청소기를 보며 신기해 하는 언니를 보니 가슴이 찡해져 왔다.

 

"니도 여기저기 함 들여다 봐라. 갸가 야무진갑다.잘 챙겨 놓았네"

"알았어, 며느리 없을 때 얼른 구경해봐야지."

씽크대안에 그릇들도, 옷장의 옷들도, 가지런히 잘 정리가 되었고 집안의 모든물건들이

새 물건이라 깔끔해 보였다.

 

아컴에서 읽은 글이 떠오른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집에 다니러 왔을 때 씽크대며 장롱을 열어 봤다고

그 며느리가 속상해 하며 다음에 또 그러면 당신 아들과 이혼까지도 생각할거라는 섬뜩한 글이

요즘 젊은 세태의 며느리상을 보는 것같아 씁쓸했다.

그래서 나도 다짐했었다. 며느리를 보게되면 아들 집을 들렀을 때 절대로 여기저기 살피지도

않을 것이며 얌전히 쇼파에 앉아 주는대로 받아 먹고, 집안의 장식품에 대해서도 이렇게, 저렇게

해라 소리를 절대로 안해야지. 아니 웬만하면 안가는게 좋겠다 싶다. 잠자리도 아들 집 보다는

딸집에서 자는게 더 편하니까. 하기사 입장을 바꾸어 나를 생각해보자.

오십이 넘은 이 나이에도 시댁식구들을 불편해 하는데 젊은 아이들은 오죽하랴.

 

씽크대 설합안에 함에 같이 넣어 보냈던 茶布가 접어져있어 꺼내어 진열해 놓은 다기 밑에다

깔다가 말고 다시 접어서 제자리에 놓아두었다. 시어머니가 손을 댄줄 알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 까하는 우려심에서...

 

이래서 남의 식구가 들어오는것이 결코 좋은것만은 아닌가 보다.

아들의 옷과 며느리의 옷이 뒤섞여 걸려있는 걸 보니 내일이면 며느리를 보는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