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청홍 보자기가 있다. 핸드백이다. "이건 누구거니?" "어머니거예요" 딸애가 호들갑을 떤다. "우와~엄마, 엄마 이거 루이뷔똥이예요" "뭐 무슨 똥이라고? 그 집에서 너거 옴마 묵으라고 똥을 넣어 보냈나" "ㅋㅋㅋ,아빠. 그게 아니고 명품 핸드백이라구요." 요란한 무늬를 싫어하는 줄 아들에게 들었는지 아무 문양도 없는 까만 핸드백인데 마음에 든다. 아마 시어머니 입막음으로 보냈나보다. 시어머니 심술이 무섭기는 한가보네.ㅎㅎㅎ 살아오면서 핸드백을 오만원 이상 주고 사 본적이 없다. 구두 상품권이 하나 생기면 핸드백보다는 신발을..아니면 아이들 다 준다. 이름 없는 메이커이지만 싸면서도 좋은 핸드백이 많다. 백화점 가판대에서 세일하고 또 해서 몇 만원 단위가 되어야 뒤적거려보는데 마음에 들어 가격표를 보고 5만원이 넘어가면 망설이다가 사지 않고 돌아서면 옆에 서있던 친구가 얼른 지 카드를 내밀어 사버린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하고 백화점에 가지않겠단다. 나를 보면 답답해서 안되겠다나.ㅎㅎㅎ 명품이라지만 이리저리 뜯어봐도 내 눈에는 3만원짜리로 밖에 안 보인다. 딸애더러 "줄까?"하니 "노털"이라고 안 한단다. 속으로는 차라리 돈으로 줬으면 몇 가지는 사겠네.. 아니,그럼 안되지. 주는 이의 마음을 고맙게 받아야지 ..고개를 흔들었다. "너거 옴마만 주고 나는 아무것도 안주나? 돈은 내가 다 주었는데.." "아, 예. 아버지거는 여기 있습니다" 아들이 엉겁결에 건네는 지갑과 밸트는 아무리 봐도 아들거다. 아까 아들 물건속에 들어있었는데 아무 말이 없더니... "에이 됐다마, 니 해라. 지갑만 있으면 모하노. 그 안에 돈이 많이 들어야재,흐흐흐" "저,그럼 밸트는 아버지 하시고 지갑은 제가 할게요" "아이다. 괜히 해본 말이다. 니 해라." 여기저기 물건을 흐트려놓고 온 식구가 난리다.다 구경을 하고 다시 주섬주섬 쌌다. 화장품과 양장은 돌려보내고, 패물과 한복만 함 속에 넣으려면 가져가야겠다. 예단 돈은 내가 보낸 만큼이다. 결국 그 돈주고 그 돈 돌려 받는 식이다. 그 돈으로 시누이 세 명, 시동생 내외간. 조카들. 남편의 사촌형제들.. 남편 양복, 내 한복, 딸 옷 사면 남는 것도 없겠다. 따지고 보면 폐물 값만 고스란히 나간 셈이 된다. 집 장만만 아니면 괜찮은 장사인데 집 마련은 온전히 우리 몫이니 너무 큰 부담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들가진이가 손해다. 큰 일을 앞에 두고 누가 손해니 이익이니 따지면 안되겠지만 속물근성은 어쩔 수 가 없다.ㅎㅎㅎ 한 쪽으로 싸놓은 짐 보따리를 보더니 남편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뭐하러 또 가져가노, 다 봤으니 그냥 도로 주라 마" "함 보낼 때 넣어서 보내야죠" "뭐할라꼬 주고 받고 하노" "그래도 격식이 있지. 함 속에 넣어야 된다니까요" "여편네들이 하는 짓거리는..마 둘이 식만 올리면 되지. 일을 만든다니께.쯧쯧" 남편의 구박에도 아랑곳 않고 패물과 한복을 챙겼다. 물론 간단하게 격식을 차리지 않고 다 생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기 싫다. 아들도 하나뿐이지만 내가 받아보지 못한 함을 며느리에게 보내고 싶다. 내 생애 한번 밖에 못해 볼 일이 아닌가. 우리나라관습을 일일이 따르지는 못해도 내가 할 수 있는건 하고 싶다는 말이다. 함 속에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주고싶은 물건을 넣어 보낸다는데 벌써 뭘 넣을까 행복한 고민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