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쪽의 거주지가 서울이라 예식장을 서울의 코엑스 그랜드볼륨으로 정했다고 한다. 나는 코엑스가 어디쯤에 있는지 모른다. 강남에 있다는 것만 알뿐.
처음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면 한다고 할 때 남편이 투덜거렸다.
"문디같이 서울에서 하모 거리가 멀어서 넘보고 오라는 말도 못하고, 청첩장도 못 돌리겠다. 마 요기서 하자캐라"
30년 공직생활을 경남에서 했으니 자식의 결혼식은 오랫동안 거주한 창원에서 하고싶어했다. 첫 혼인이라 남편은 직장 동료나 친구들에게서 축하도 받고싶어했고, 은근히 아들도 며느리도 자랑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하지만 우리나라 관혼 관습으로는 신부측에서 날짜와 장소를 먼저 선택할 수 있으니 신랑측은 신부측에서 정한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아들에게 넌지시 남편의 뜻을 전하니 신부의 부모가 서울에서 나고 자라고, 직장도 서울이라 웬만하면 꼭 서울에서 치렀으면 한다고 했다.
물론 서로 상의하여 신랑측에서 주최할 수도 있지만 저쪽에서 간곡하게 양해를 구하는데야 별 도리가 없었다. 아들의 눈치도 서울에서 했으면 하는 것 같다. 대학 때부터 서울에 있었고 직장도 서울이니 친구들을 많이 초대하고 싶은 모양이다.
아들에게서 그 말을 전해들은 괜히 남편은 심통을 내었다.
"그라모 예식장비용을 저거보고 다 내라캐라. 만약에 창원에서 하면 우리가 다 내겠다고 하고.."
"아니 무슨 그런 억지를 씁니까. 그냥 저쪽에서 하도록 내버려두세요. 억지를 쓸걸 쓰야지."
곰곰이 생각하니 잘되었다 싶다. 창원에서 하게 되면 아이들이 다 서울에 있으니 예식장에 관한 모든 일들을 나 혼자 처리해야 하는데 그 일 또한 보통 일이 아니며 서울에서 내려오는 손님들을 접대하는 일도 만만찮으며 아들의 친구들을 위해 버스를 대절해야하는 것도 문제이고, 아들의 직장이 서울에 있는데 결혼하는 당사자의 직장동료들이 많이 축하해주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신부측으로 양보하는 채 하며 서울에서 하라고 인심을 썼다. (표현이 조금 이상한가?)
경남에서 가는 하객들과 친척들을 위하여 버스를 한 대 대절하려다가 남편과 합의 하에 그만두기로 했다. 경남에서 서울에 가자면 꼭두새벽부터 움직여야하는데 하객들의 아침식사부터 중간 간식, 점심은 예식장에서 먹는다 쳐도 돌아오면서 저녁까지 챙겨야하고, 버스 대절비에 기사 팁도 수월찮게 주어야하며, 또 만에 하나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찌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골치가 아파 일절 생략하기로 했다.
직계친척들만 각자 알아서 오라고 통보하고 남편의 직장에도, 친구들에게도 결혼식에 무리하게 오지 마라고 했다. 물론 내 친구들에게도 먼길이라 오지 않아도 절대 서운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오지 마라고 당부하였다. 남편 직장의 직원들 부인들이 집에까지 찾아와서 예식장에 가면 안되냐고 오히려 부탁 조로 말했지만 계속 손을 내젓는 나를 보고 예식장에 오지 마라고 하는 혼주는 처음 봤다며 계면쩍게 웃었다. 난들 왜 그러고 싶겠는가. 많은 축하객이 와서 아들의 혼인을 축하해주면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지.
하지만 길이 보통길인가. 버스로 장장 6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주말이라 돌아가는 길이 밀리면 밤늦게 도착하는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극구 만류하였던 것이다.
보통 예식장에서는 식을 보고 점심을 먹고 나면 한 시간 삼십분 안에 다 끝나는데 왕복 12시간을 길에서 보내는 것이 그저 미안하고 미안해서였다. 일가 친척들에게도 직계외에는 사촌들도 오지 마라고 했더니 서운해하며 자신들이 알아서 가겠다고 한다. 오지 마라고 손사래를 치는 내 마음도 솔직히 편치가 않다.
일단은 우리 쪽 하객들은 아들의 친구와 직장동료들, 친척들, 남편의 친구들.. 대략 200명으로 잡았다. 신부 쪽에는 650명을 예상한다면서 850명 좌석을 예약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장소가 얼마나 넓기에 그 많은 인원이 다 들어가는지...
에고 모르겠다 싶다. 자기들이 주최하니 머리에 이고 있든 업고있든 알아서 하겠지. 결혼식 이틀 전에 대구에 사는 언니와 같이 서울로 갔다. 남편은 다음 날 올라오라고 했다.
오랜만에 언니와 나, 딸하고 여자 셋이서 명동에도 가고, 남대문시장도 가보고, 외식을 하고, 네온싸인 아래서 청계천도 거닐어보고, 멋진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차도 한잔마시고 집에 들어와 속옷 차림으로 드러누워 남편 흉이나 실컷 보려고 했다.
따르릉~ 핸드폰이 요란을 떤다. 남편도 오후 비행기로 올라온단다.
"녜??오늘 온다고? "
정말 밉상이다. 지난번 이사 때 다 정리를 못하여 언니와 여태 청소하고 겨우 허리를 펴고 외출 준비를 하려는데 온다니....참 내.
"아니 집도 비좁은데 언니가 하루라도 편하게 지내게 당신은 다음 날 오세요. 와 봐야 달리 할 일도 없는데..그리고 일은 안하고 오세요?"
"그란께 저녁 비행기로 갈라꼬. 그라모 하루만 휴가내면 된다 아이가. 당신한테 걸리적거리지않게 한쪽에 가만히 있을꾸마"
다음 날 오라는 매몰찬 내 어투에 기가 죽었는지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소곤거린다. 평소에도 내가 이렇게 큰소리 치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꼬. 하하하
그래 봐주자. 아들 결혼식에 좋은 마음으로 참석하려면 화를 내면 안되지. 시계가 6시를 가리킨다. 7시 비행기를 타면 8시 도착, 택시 타면 20분만에 오는데... 버스 타고 명동까지 한시간이나 걸리는데 아예 나갈 엄두도 못 내겠다.
남편은 이미 공항으로 가는 차안에서 전화를 한다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 부랴부랴 쌀을 씻고 반찬 준비를 하는데 전화를 엿들은 언니가 한 마디 거든다.
"우짜든지 너거 둘이는 천상~ 연분이다. 쫄쫄이 맨커로 마누라 궁디 따라다니는 신랑도 있을 때가 좋은 줄 알고 암말 말거래이."
"피. 좋기는.. 하루라도 편하게 내버려두면 어디가 덧나나? 혼자 편안하게 있다가 내일 오면 되잖아. 진짜로 얄밉다니까. 아들 같으면 한 대 쥐어박았으면 좋겠네."
"크크크, 요새 그런 신랑 찾아볼라캐도 없지. '내를 너무나 사랑하는갑다' 그리 생각하라모"
"치,사랑은 무슨.... 마누라 편한 꼴을 못 본다니까. 에이."
딩동~
"어이 마누라 내가 왔다아이가."
누가 반긴다고.. 목소리 톤을 높여가며 호들갑스럽게 집으로 들어서는 남편.
참말로 못 말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