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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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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풍경 3


BY 수련 2006-05-11

언젠가 세종문화회관에 전시회 구경을 갔다가 길을 잘 못 들어
지하 웨딩 홀을 들어서게 되었다.
가운데는 얼음 조각이 있고 원탁이 둘러져있고 그 주위로 예사롭지 못한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들이 한 눈에도 상류층 결혼식인 것 같아 보였다.
'에구머니나'하고 얼른 돌아서 나왔지만 입구에서 인사를 하고 있는 혼주들도 여간 세련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 결혼식이 그 때 본 그런 상류층 결혼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건 아닌데..... 하지만 이미 결혼식은 곧 진행 될 것이다.
원래 아들놈이 입이 무겁다. 결혼식 전반적인 진행 사항을 나한테 언급을 하지 않았다.
신부측에서 준비를 하고 이벤트는 며늘아이와 둘이서 계획을 해놓았으니
그냥 몸만 오라고 했기에 "진짜" 몸만 갔다.

안내아가씨가 남편과 내 옷고름에 꽃을 달아주고 흰 장갑도 끼라고 주었다.
슬슬 우리 쪽도 손님이 오기 시작하고 얼떨결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보니 그제야 내가
혼주라는 기분이 들었다.

 

아들의 직장팀장과 동료들이 다가와서 인사를 한다.
"저희 아버님 어머님이십니다.
이쪽은 저의 회사 팀장이십니다."
"어서오세요. 감사합니다."
"어??..저, 저 정말 어머니세요?"
"그럼요."
"아, 친척누님이나. 고모님인줄 알았는데..."
히히히 흐흐흐 내가 엄청 젊어 보였나 보다. 에헴! 기분이 좀 괜찮네. 영감 눈이 홱 올라간다. 우리 쪽에는 아들의 친구, 직장동료들,  남편의 동기생들이 부부동반으로 스무 명 남짓 몰려오고, 뒤이어 내 친구들, 서울에 사는 몇 안 되는 지인들, 도청, 시청 직원들이 몇 명 눈에 띈다. 인사하느라 정신이 없다. 누가 누군지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때.


"아이고, 머슴아야. 너거 마누라 이뿌네. 어메, 참 곱다"
호들갑스럽게 남편 어깨를 툭 치는 아줌마, 아니, 중늙은이 세 명이
내 손을 잡고 흔들며   사람 혼을 더 빼 놓는다. 남편의 초등학교 동창생들이다.
"문디 가시나들 뭐할라꼬 왔노. 길도 먼데.. 고맙대이"
"뭐라카노 우리가 안오면 되나. 근데 너거마누라 본처 맞나?"
"아 참 내, 마 씨끄럽다. 퍼뜩 들어가라 "

초면인 별 세 개 짜리 동기생이 남편을 저만치 데려가서 귓속말로 뭐라고 한다.
자리로 돌아 온 남편이 혀를 찬다.
"참내. 그놈의 지슥, 당신보고 세컨드인지 물어본다 아이가. 오늘 화장을 해 놓은께 쪼매 젊어 보이기는 하는데..쯥. 눈깔들이 다 삤는갑다. 쯧쯧"
크크크 오늘 아들이 장가가는지 내가 시집을 가는지 헷갈리지만

예쁘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다.하하하하,

 

시간이 지나니 우리 쪽은 띄엄띄엄 하객들이 줄어드는데 저쪽 사돈네를 쳐다보니 하객들이 봉투를 들고 아예 줄을 섰다. 줄서서 극장 표 사는 것 같다. 아, 기죽네 기죽어.
남편 말대로 사돈네가 손님이 많아서 서울에서 예식을 치르니 경비는 자기들이 다 내면 되겠네, 하면서 혀를 차기에 그러지 마라고 했는데 나도 같은 마음이 들면서 슬슬 심술보가 또 터지려고 한다.

 

진행 요원이 오더니 남편을 데려가고 연이어 나보고도 따라오란다.
어느 새 하객들은 자리에 앉아있고 남편은 자기 자리에 앉아있다. 바깥사돈은 어디 갔지?
안 사돈과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가서 촛불을 켜는 방법과 하객들을 향하여 인사하고
자리에 앉는 것까지 진행요원이 꼼꼼하게 일러준다. 정말 친절하네. 
안사돈과 손을 잡고 무대 위를 걸어가니 조금 떨린다. 촛불을 켜고 안사돈끼리 마주서서 인사를 하고 남편 옆에 가서 앉았다.

 

"신랑 입장"
학군단들이 발을 구르며 칼을 들고 들어오더니 터널을 만들고 그 안으로 우리 아들이
씩씩하게 들어온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결혼식 진행에 대해서 아들놈은 일체 말을
해주지 않았다. 후배인 학군단들이 터널을 만들어 주니 그냥 저냥 밋밋하게 혼자
걸어 들어오는 것보다는 보기가 훨씬 낫다.

 

"신부입장"
바깥사돈의 손을 잡고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며느리가 입장한다.
아, 너무 아름답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따로 없다. 아냐, 선녀보다 더 예쁘다.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저 싱글벙글한다. 아들과 나란히 서서 인사를 하는데
"선남선녀"가되어 너무 잘 어울린다. 곱다. 예쁘다. 사랑스럽다. 내 아들이, 며느리가 맞나? 살짝 손등을 꼬집어보았다. 아프다.

 

그런데 사회자의 목소리가 어째 여자소리 같을까? 뒤돌아보니 여자였다. 근데 어디서 본 것도 같은데.. 저 애도 오목조목 참 예쁘게 생겼다.
그래도 우리 며느리만은 좀 못한 것 같다. 주례는  아들의 대학교수님이 서 주었다. 사회자가 여자라서 모두들 의외일거라며 주례선생님이 설명을 한다. 신부의 오랜 친구이며 모 방송국 아나운서라고 소개하였다.


아하, 그래서 목소리가 낭랑하구나. 결혼식에 여자가 사회 보는건 첨 본다.
이어서 주례가 시작되고 신랑 신부 자랑도 해주고,  고사성어도 곁들여 신랑신부를 축하 해 주었다. 보편적인 결혼식에는 주례사를 할 동안 사람들은 지루해 하며 수군거리는 통에 소란스러운데 어찌된 영문인지 850여명이 한결같이 소리 한번 안 내고 조용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들이 말했다.


" 야, 역시 서울 사람들은 교양이 있는 갑다. 아무도 옆 사람과 수군거리지 않데.
우리 동네 같으면 '아저씨 혼자 말씀하이소' 하고는 수군수군.. 시끌벅적 할건데...."

주례사가 끝나고 우리 딸이 오빠를 위하여 바이얼린 축주(祝奏)를 했다. 사랑의 향기에 나오는 탱고다. 약간 빠른 템포지만 듣기는 괜찮다. 참, 딸 교대 친구들이(음악교육과) 결혼연주곡을 해주기로 했는데 끝나고, 오빠 친구들 중에서 한 명씩 점찍으라고 했더니 딸년이 우리 옴마 주책없다고 면박을 주었다.

 

다음에 양쪽 부모에게 절을 하는데 사돈 쪽에 가서 먼저 절을 한다. 아니 왜 우리한테 먼저 안 오지? 못마땅하다. 안사돈은 눈물이 나는지 손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이 좋은 날 울기는 왜 울어?  다음으로 남편과 내 앞에 와서 아들은 큰절을 하고 며느리는 허리까지 고개를 숙인다. 내 입이 한껏 벌어진다. 내 아들도, 며느리도 너무 예쁘다.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신랑신부다. 적어도 내 눈에는....


집에 와서 남편은 아들이 절을 할 때 가슴이 울컥했단다. 나더러 아무렇지도 않더냐 고 하기에 '전혀, 기분이 좋아서 입이 함박 벌어지던데' 했더니 '무슨 여편네가 감정도 없냐?' 했다. 치, 정말 감정이 없어서 그런가, 난 그저 기분이 좋아 죽겠던데. 하하하하

"다음에는 신랑이 신부에게 바치는 노래를 하겠습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우리 아들이 노래를 한다고? 어머머 쟤가 노래를 잘하기는 하나? 괜히 창피 당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이재훈의 '사랑합니다'를 부른단다.  에구구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높은 음에서 안 올라가면   어쩌나?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내 가슴이 콩닥콩닥 거린다. 그러나...
정말 잘 부른다.
'저 놈이 일은 안하고 노래방만 다녔냐 웬 노래를 저리도 잘 부르지?'
암만 봐도 멋있다. 멋진 놈!.
내 아들이 맞나?  이제는 얼굴 근육이 옆으로 벌어져 굳었는지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는다. 하하하하하하~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채 끝나기 전에  사회자의 충격적인 또 한 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