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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풍경5(마지막)


BY 수련 2006-05-11

 

신랑신부가 퇴장하고 하객들은 점심을 먹기 시작하는데 사회자가 또 2부가 시작된다고 하였다. 잠시 뒤에 무대에 불이 꺼지고 몇 초가 흐른 뒤에 부분조명이 등장한 신랑신부에게
비췄다. 어느 새 한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무슨 패션쇼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에 시골 시엄니는 뭐가 뭔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불이 환히 켜지고 신랑신부는 하객들을 향하여 곱게 큰절을 올린다.
다음에는 3단 케이크를 절단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뒤이어 신부 친구 세 명이 신랑신부 앞으로 나왔다.

 

"♩축하합니다~"라는 노래를 신랑신부에게
불러주니 저 뒤에 앉아있던 아들 친구 놈들이 우르르 일어나서 합창을 한다.
하객들도 밥 먹다 말고 손뼉을 치며 장단을 맞추고..

도대체 여기가 결혼식 하는 곳이 맞아? 아이고마, 나는 도대체가 정신이 없다.
아들놈과 며느리가 이 결혼식을 위하여 얼마나 신경을 썼을까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찡해져 왔다. 평생에 한 번 있는 결혼식인데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많이 한 표가 역력히 나타난다. 괜히 뒷짐을 지고 심술을 부렸음이 미안한 마음이 되었다.

 

안내인이 오더니 신랑신부를 앞세우고 옴마 아부지는 뒤를 따르면서 각 테이블마다 인사를 하게 했다. 신부측에는 신부 부모만 따라가게 했고, 우리측에는 우리 부부가 따라 다니며 일일이 인사를 했는데 정말 마음에 드는 진행순서였다.

 

결혼식을 치르다보면 정신이 없어 하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보낼 뻔했는데
그런 순서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고, 아이들도 남편친구들에게, 내 친구들에게 인사를 시키게 되어 가슴이 뿌듯했다.

 

인사를 다하고 나니 안내인이 얼른 식사를 하란다. 잠시 후에 폐백실로 올라간다고...

결혼식 전날 아들녀석이 더듬거리며 아버지에게 말을 했다.


"아버지 폐백할 때 신부 부모님도 절을 받으면 안됩니까?"
"왜? 받고 싶다고 하더냐. 그라모 받으시라고 해라."

폐백이란 신부가 신랑부모, 일가친척들에게 시집오면서 시댁 식구가 되었음을 신고하는 자리이다. 신부측부모는 아이들이 신혼여행 다녀와서 그때 부모에게 큰절을 하기 때문에 결혼식후에 원칙은 폐백자리에서는 절을 받는 법이 아니다.

 

결혼식 일주일 전에 아들에게 이미 들었었다. 그때 일언지하에 내가 안 된다고 했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아들이 없어서(딸만 둘) 그런 기회가 없으니 절을 받고싶다고 한단다.
나한테는 이미 거절당했고 아버지에게 다시 청을 하는 것이었다.

나도 가만 생각하니 현대에 살고있는 내가 굳이 그런 구습을 따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딸도 자식인데 사모관대를 입은 사위에게서, 연지곤지 찍은 예쁜 얼굴에 족두리를 쓰고 활옷 입은 딸에게서 큰절을 받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예부터 내려오는 관습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 시댁 식구들에게 예를 다 하고 나서 신부부모에게 절을 하라고 했다.

 

"그래 오셔서 절을 받으시라고 해라. 대신 우리 친척들까지
다 받고 난 뒤에 받으시라고 하거라"
"예이~"
아들놈은 지가 더 신이 난 목소리로 힘차게 대답을 했었다.

폐백실에 올라가니 언제 옷을 갈아입었는지 신랑신부는 얌전하게 서서 우리가 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 며느리에게서 절을 받으니 진짜 시어머니가 된 실감이 났다.


다음으로 시동생 내외. 그 다음에 시누이들 내외가 절을 받고
또 조카부부들을 한꺼번에 앉혀 절을 받게 했다.
며느리가 다리가 아플 것 같아 내가 그렇게 제의를 하니
얄미운 시누이가(아들 작은 고모) 안 된단다. 내가 우겼다. 내 며느리니까. 하하하

우리 가족들이 다 나오고 사돈부부가 한쪽 구석에 서 있다가 주춤주춤 들어가서 앉는다.
아이들이 절을 하니 또 안사돈이 눈물을 훔친다. 나도 딸을 시집보내면 저런 마음이 될까.
주책이 없게도 나는 계속 싱글벙글만 하고 있었는데...
그제야 안사돈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고이 키워서 시집보내는 친정엄마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친척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아이들은 신혼여행 갈 준비를 하고 사돈부부와 우리부부에게 인사를 한다. 애들은  코엑스 측에서 준비한 리무진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얼떨떨한 하루였고
꼭 남의 결혼식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