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반려 동물세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030

반상회에 나가세요?


BY 수련 2006-05-11

"딩동~ 503호에서 반상회를 합니다. 퍼뜩 오이소"


솔직히 가고싶은 마음이 없다. 새로 이사 온 아파트 통로이웃주부들이
평균 연령이 30대 중반이고  40대 한 집, 50대는 나를 포함해 두 집으로 14구다.
젊은 주부들끼리 어울려 다니다보니 낮에 하던 이야기가 반상회 때까지
이어져 초등학교아이들의 학원이야기, 중학교 선생님 흉보기...


아이들이 다 자란 50대는 아예 대화에 끼여들 자리가 없다.
세대차이가 현저하게 드러나는 현상이다. 그렇다고 안나가자니 벌금을 내라고 하고.
그렇다고 딱히 중요한 현안사항이 있는 것도 아니다.
처음 입주했을 때는 아파트 관리 문제나 보수 때문에 이웃 간에 정보를 주고받는
유익한 자리가 되었지만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면서 그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엄마. 맥주 없어? 한 잔 먹게 가져와"
"물론 있~쥐. 나이 드신 분들도 한잔하실래요?"
간식거리가 계속 나오고 점점 젊은 엄마들의 수다는 끝날 줄 모르고.
7시30분에 시작해서 10시가 넘어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집 남편은 어디 갔어요?"
"예. 반상회 끝날 때까지 밖에 있으라고 했어요. 마치면 전화한다고.."
남편이 직업군인인데 6시면 퇴근하고 밥 먹고 나가서 10시가 넘도록
집에도 들어오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9시 뉴스시간이 지나고 10시가 되어도 일어날 생각들을 않는다.
"에고, 나는 '생로병사' 프로 보러 가야겠어요. 모두들 안가요?"
"먼저 가세요. 우린 좀 더 놀다가 갈랍니다"
아니 도대체 반상회인지 뭔지 모르겠다.

 

고양시에 딸아이와 아들이 살고있을 때였다.
그 통로반장이 아이들이 반상회를 안나와서 벌금과 회비가 몇 달 밀렸으니
3만원을 내라고 한다고 딸애가 황당해 했다.
처음에는 벌금이 아까워 오빠더러 반상회에 나가라고 했더니 펄쩍뛰면서
"무슨 소리야. 아줌마들만 있는데 내가 왜가니? 네가 가라. 넌 여자잖아"
"난 처녀인데 아줌마들 속에서...에이 싫어.."
 반상회가 있다고 엘리베이터안에 공지를 해 놓은 날에는
아예 둘 다 늦게 들어온단다.

 

내가 아이들 집에 갔을 때 반장이 밀린 회비와 벌금을 받으려 왔다.
사정 이야기를 하고 회비는 낼 테니 벌금은 면해달라고 했더니
돌아가면서 반장을 하는데 반장 안 시키는 것만 도 다행인줄 알라며
자기도 돈 받으려 다니는 것이 제일 난감하단다.

 

오늘 신문에 반상회의 존폐설문조사결과가 나왔다.
 리서치결과 응답자의 82%가 반대를 한단다.
물론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이웃 간의 화합을 위해 반상회는 필요하다고 하지만
 부부가 직장을 다니는 집은 자신의 집에서 반상회를 하는 날이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독신자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고..
중요한 공지사항이 있으면 엘리베이트안에 붙여놓고,  시,군,구, 동사무소에서 알리는 일반적인 사항은 아파트 게시판에 게재하면 될 것이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집을 계속 비우는 내 경우는 계속 벌금만 문다.
내 사정을 말을 했지만 반장의 난처한 표정에서 더 이상 우기기도 뭣하다.
반상회 날 일이 있어 집을 비우는 사람들에게도 벌금을 면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형평성에 어긋나서 곤란하단다.

 

꼭 날짜를 정해 놓고 반상회를 하지 않아도 마음에 맞는 이웃끼리 수시로 만나
차도 마실 수 있고, 같이 어울려 마트에도 가고, 또  같은 또래 아줌마들은
공유할 수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신이 날것이다.
마지못해 반상회에 나가고, 자기 집에서 반상회를 하는 날이면
퇴근한 남편들을 오갈 데 없이 밖에서 서성이게 하고,
또는 방에서 못나오게 가두어 놓고 푹 퍼지고 앉아 아랑곳없이
수다를 떠는걸 보면서 반상회에 참석한 내 마음도 편치가 않았다.
반장이 알려주는 공지사항은 5분이면 끝나고,
나머지시간은 잡담을 나누는 것이 올바른 반상회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작년에 반상회를 참석해서 건의를 했다.


아파트입주하고 일년이 지났으니 얼굴도 다 익혔고 아파트 보수문제도
거의 다 해결했으니 반상회를 폐지하자고 했다가 곱지 않은 시선에 뒤통수만
뜨겁게 데이고 말았다.

 

50대인 나는 자식들 혼인이야기를 하고,
젊은 세대는 유치원, 초등학생들의 학원이야기를 하니
서로간에 겉도는 대화가 앉아있는 자리도 불편하게 만들었다.
젊은 엄마들의 숫자에 밀려 슬그머니 일어나 나오는
내가 나이 들었음을 새삼 느끼게 하는 반상회를
두 번 다시 가고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벌금이 많이 밀렸다. 밀린 벌금만큼 이웃이 자꾸 불편해 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