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많이 춥다고 해도 집안에만 있어서 체감하지 못하고
얇은 바바리코드를 걸치고 시장엘 나섰다.
나선 김에 내 걸음으로 30분은 족히 되는 구간에 있는
엘지전자에 들러 전화기를 손보려고 전화기까지 들고 나섰는데
날씨 매운 것이 장난이 아니다.
꽃샘추위가 절정에 다다랐다는 뉴스를 봤어도 설마! 했는데
걸음을 재촉하는 발길이 자꾸 오그려 붙는다.
엘지전자서비스센터에 도착하여 전화기가 잘 안 들린다고 고쳐달라고 했더니
본체를 가지고 와야한단다. 전화기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런 난감한 일이..
몸을 잔뜩 웅크리고 뛰다시피 왔는데 다시 집에 가서 본체를 가져와야 한다고?
다시 집에 다녀오지는 못하겠다. 일단 후퇴다. 내일로 미루어야겠다.
괜한 헛걸음이 억울하다.
전화기를 넣은 종이가방을 든 맨손이 시려 팔목에 끼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오는 길에
고등어 한 마리와 상추를 샀다.
배추시레기를 깔고 고등어를 졸여 상추와 곁들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생각만도 벌써 입안에 군침이 돈다.
입맛을 다시며 두 손을 포켓에 집어넣고
잰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 앞에서 코드의 소매단추가 툭 떨어졌다.
손이 시려 봉지를 팔목에 걸친 채 주머니에 두 손을 억지로 밀어 넣고
왔으니 단추가 밀려 떨어진 것이다.
집에 들어오니 얼굴이 얼얼하다. 옷이 녹색이라 초록색 실을 꿰면 되겠다.
한 손에 바늘을, 또 한 손에 실을 쥐고 바늘구멍을 노려보았지만
실은 자꾸 헛 질만 한다. 초록색이 까만색으로 보인다. 다시 실끝을 자르고
침을 묻혀 손끝으로 비빈다.
밝은 베란다 쪽으로 바늘을 세워 구멍을 확인한 다음에 또 시도해 보지만
여전히 실은 구멍을 비켜났다. 짜증이 난다.
중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항상 재봉틀에
앉아 계셨고, 학교다녀왔습니다를 미쳐 외치기전에 엄마는 미싱 바늘에 실을 꿰라고
하셨다. 몇 번은 가방을 던져놓고 실을 꿰었지만 그 뒤로는
심통을 부리며 모른 채 했다.
"엄마는 손이 없어? 왜 나만 보면 실을 꿰라고 해? .그 미싱질도
제발 그만해. 보기 싫단 말이야."
그 당시 엄마는 무에 그리 기울 것이 많았을까.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늘 손 미싱을 돌리고 있었고,
어떤 때는 그 앞에서 머리를 박고 졸고 계셨다.
"엄마!" 귀에다 대고 큰소리로 불러 깜짝 놀라게 만들어도
야단은커녕 내가 엄마 눈앞에 있으면 또 바늘에 실을 꿰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가 공연히 나만 보면 바늘,실 타령을 하는 줄 알았다.
한번은 엄마 손을 잡고 실을 꿰면서 이렇게 잘 넣으면서 왜 안 된다고 하느냐고
소리를 지르면 "니 눈은 달처럼 환하게 밝으니까 그렇재"
바늘과 실을 잡고 허둥대는 오늘의 내 모습이 40년 전의 엄마 모습이었다.
겨우 단추를 달아놓고, 밥을 안치고, 고등어를 졸이고, 상추를 씻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다.
"오늘 저녁 먹고 간다"
김이 팍 샌다. 상추 씻는 손이 느려지고 벌써 보글보글 끓는 고등어 조림의
얼큰한 냄새가 뱃속을 자극하여 쪼르륵거린다.
싱크대 앞에 서서 상추 두 잎을 손바닥에 펴서 밥 한 숟가락
고등어살점을 떼어 얹고 된장을 올려 한 입 가득 우물거리는데
꿀맛이다. 엄마도 우리들이 늦게 올 때 혼자서 부뚜막에 걸터 앉아
밥을 먹었을까.
갑자기 목이 메인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두 번째 상추쌈을 입안으로
밀어 넣는 내가 너무 우습다.
내일 큰 바늘을 사와야 겠다. 남편 바짓단도 기워야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