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하는 분위기가 어째 이상해지는 것 같다. 서로의 탐색전이 너무 길지않나?
에이 모르겠다. 상견례를 해봤어야 알지. <相見禮-공식적으로 서로 만나 보는 예>
풀이대로 그냥 서로 예의를 갖추어 인사만 하고 끝나는 것 인가보다.
내가 듣기로는 상견례 하는 날에 혼인식에 관한 전반적인 논의를 한다고 하던데
아직 저쪽에서 아무 말이 없는 걸 보니 이 정도로 끝내야겠다.
나야 솔직히 전세금이나 보태주면 좋겠다는 말 외는 할말이 없다.
벌써 술이 두 병째다. 남편이 '돈'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라고 했으니 그냥 입다물고 일어설 수밖에.
남편이 술로 더 실수하기 전에... .
"이제 술은 그만 드시죠"
내가 일어 설 폼을 하니 콧소리만 내던 안사돈이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드는지 자세를
고쳐 앉는다.
" 저기요. 예단은 어떻게 할까요? 그리고. 이바지 음식은 언제쯤 보낼까요? 그리고 저기.."
갑자기 '그리고' 가 많아지면서 한꺼번에 질문을 다한다.
영감은 일어서려는 마누라가 도로 주저앉을 이유가 생겼다 싶으니 신이 났다.
"하모, 하모. 여자들은 그런 이바구를 해야지. 사돈! 우리는 골치 아픈데 여자들끼리 이바구하라 카고 우리 둘은 술이나 묵읍시다."
" 아. 예. 그러죠 뭐" 어느새 두 사람은 술로 의기투합이 되었다. 못 말려.
아니 진작에 본론을 끄집어내지 왜 이제야 시작하여 술만 더 먹게 만들어? 이상한 여편네여.
"예단은 남들처럼 그냥 돈으로 주시면 우리 쪽 친척들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바지음식은 전에 이야기했듯이 우리가 서울로 올라 가야하니 혼인식전에 하지말고,
신행때 보내주세요"
"예, 안그래도 경상도쪽 풍습을 잘 몰라서 부산에 친한 친구가 사는데 그쪽에서 음식을 해서 보낼까해요"
"너무 그렇게 힘들게 생각하지 마시고 집에서 그냥 간단하게 준비해서 보내시면 되요."
나도 딸 가진 입장이라 웬만하면 번거로운 음식은 하지 마라고 하고싶었다. 그런데 사촌형님이 아들도 하나뿐인데 언제 그런 상을 받아보며. 또 상을 차려 조상님께 새 며느리가 해온 음식으로 절을 해야하는데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그냥 모른척하고 상을 받아라.
우리 집에서 제사를 지내니 할 수없다.신행때 친척들도 다 올거고 아무래도 음식이 있어야겠다.그런데 친구에게 부탁을 한다고? 차라리 내가 하는 편이 낫겠다.
"남에게까지 부탁하실거면 그만 두세요. 제가 생선 두어 마리 찌고, 나물 몇 가지해서 상을 차릴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마음에도 없는 말이 왜이리 술술 잘나오지?
"그러면 안되죠.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그건 그렇고 저어기..."
아니 왜 저리 뜸을 들일까? 또 무슨 말이 남았지? 없는 것 같은데...
옆자리의 남자 둘이 여자들을 힐끔거리며 간간이 큰소리로 웃음소리도 내면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신이 났다.
" 무슨 말씀인지 하세요"
"저, 집 말인데요. 아무래도 전셋집 구하기가 어렵네요. 돈이 적어서.."
또 집이야기다. 그렇지 아직 집이야기가 안나왔네.
"예? 집이요? 걱정 마이소. 우리가 25평 전세 구해 줄테니께 "
남편이 술을 먹다말고 언제 우리 대화를 엿들었는지 집 이야기가 나오자
얼른 가로채 자신 있게 큰소리를 친다.
"어머 그러세요? 호호호 그럼 집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내가 미쳐! 무슨 돈으로.. 퇴직금 대출 받아 아들오피스텔 얻어주었는데 또 대출을 받아?
"이제 이바구 다 끝났죠? 자 한잔 더 하고 우리 노래방이나 가입시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여? 노래방? 아니 저 영감이 정신이 오락가락하나? 상견례 끝에 노래방 갔다는 소리는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맞은편 사돈네도 어안이 벙벙해지는지 눈이 동그래진다. 안사돈이 입을 크게 벌려 웃는다.
"호호호 상견례하고 노래방갔다고 하면 아마 노란 신문에 날거예요"
이번에는 내가 남편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이고 아파라. 이놈의 여편네가 와 이리 꼬집어샀노"
상황이 반전되었다. 바깥사돈은 술을 같이 먹었는데도 흐트러지지 않고 똑바로 앉았는데
남편은 한 술 더 떠서 우리도 젊은이들처럼 오늘 올나이트 하잔다. 내가 못살아.
"언니야~ 요기 술 한 병 더 가져온나" 남편을 또 꼬집었다.
"이야기 다 끝났으니 그만하시고 일어납시다"
"뭣이. 오늘 사돈도 생기고 기분이 좋아서 한잔 더하고 노래방도 갈건데 자꾸 잔소리 할끼가 앙?"
속이 탄다. 남편이 술이 취했을 때 다그치면 더 억지를 부리는 스타일이라 어린아이처럼
살살 달래야하는데 상황이 자꾸 심각해지니 나도 당혹스러워진다.
반전된 상황에 저쪽 안사돈의 표정이 왠지 고소해 하는 것 같아 자꾸 속이 상한다.
"우와. 사돈 멋있습니다. 저는 결혼하고 한번도 큰소리를 못 쳐봤는데... 나도 언제 저렇게 큰소리를 쳐볼까. 부럽다 부러워. 좋~습니다. 2차는 제가 사겠습니다."
아니 저 양반은 또 왜 저러지. 상황이 또 반전. 갑자기 안사돈의 눈매가 올라간다.
"어머머 여~뽀. 그러면 안뙤~지. 고만 합시다"
"응? 그럴까... 알았어" 마누라 한 마디에 금새 꼬리를 내린다. 우리 아들도 장가가면 저렇게 되는거 아녀? 이놈의 영감탱이!
차에 타면 한번 두고보자. 그러나 부글부글 끓는 속과는 다르게 내숭녀인 나는 계속 고상하게 웃는다.
"흐흐흐 그럼요. 오늘만 날인가요. 이제 자주 만날건데요 뭐. 그때는 2차, 3차도 가셔야죠"
얼른 일어나 먼저 옷을 입었다. 남편에게도 코트를 억지로 입혔다.
마지못해 일어서면서도 계속 노래방 가자고 야단이다.
계산서를 받아 남편이 카드로 결제하고 아가씨에게 만 원짜리 두 장을 팁으로 건넨다.
"언니야! 수고 했다이"
"예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밥값 속에 서비스료도 다 포함되어있는데 왜 팁을 따로 주는지.. 그래요 영감은 천당 가고도 주리가 남겠수.
엘리베이터 앞까지 바깥사돈과 팔장을 끼고 노래를 부른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헤이헤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안사돈과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나는 영감을,
안사돈은 바깥사돈을 동시에 떼어냈다. 딩동~
"안녕히 주무세요" "안녕히 가세요" 안사돈과 눈웃음을 맞추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어,어, 이 사람이 어디갔어. 쩨쩨하게 사내자슥이 마누라한테 그렇게 꼼짝못하고..
에이 파이다. 어이 우리 마누라 오데갔노. 어, 요기있네. 내 오늘 잘했재?"
"아~주 잘했어요. 끝내주는 상견례였어요."
"그래? 내가 누구여? 히히히 .어이 미래의 시엄니야! 너무 유세 떨지 말어.
우리 며느리 참 이뿌던데. 안그래?"
"그래요.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네요."
"어, 우리 마누라도 오늘 본께 참 이뿌네."
눈을 흘기는 내 뺨에 술 냄새를 풍기는 입술로 뽀뽀를 해댄다.
"쓸데없는 소리말고 어서 타요"
"오케이~ 자, 우리 집으로 출발, 오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