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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ato


BY 수련 2005-07-19

과일도 아닌 것이 채소도 아닌 것이..

음식의 재료로 쓰임새가 많아
유럽의 식품학계에서 채소로 결정을 했다는 토마토!.
우리나라 정서에는 아직도 채소보다는 과일 쪽이 더 가깝다고 느껴진다.

서양에선 토마토가 샐러드나 요리재료로 많이 이용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음식의 재료보다는 과일로 먹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토마토의 효능에 대해 오늘 아침 텔레비전 프로에서 방영하였다.
토마토를 많이 섭취하여 피부미인이 된 두 여자 분이 출연했는데
한 분은 80세 할머니다.
할머니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주름이 적고
피부가 매끄러워 검사를 해보니 생체나이가 무려 16살이나 적은 54세로 나왔다.
그 할머니의 냉장고속에는 토마토가 가득하였고, 87개 짜리 토마토 한 박스를 일주일에
다 드신단다.
또 한 젊은 여자는 아이가 셋인 39살 주부인데 한 눈에도 전혀 세 아이의
엄마로 보여지지 않을 정도로 피부가 탱탱해 보인다.
토마토를 먹기 시작한지 3년이 되었다는데 몸무게도 5kg나 감량하고
건강해지고 피부도 너무 좋아졌다면서 그 집 아이들의 간식도 토마토란다.

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 얼굴이 파랗게 된다”는
유럽 속담이 있을 정도로 토마토는 건강을 지켜주는 좋은 식품이며
두 개 정도만 먹으면 하루 필요한 비타민 C를 모두 취할 수 있고
칼로리가 오이보다도 적어 다이어트에도 큰 효능이 있다하니
나온 뱃살이 마지막 말에 갑자기 귀가 솔깃해 졌다.


하지만 나는 과일(?)중에 토마토를 제일 싫어한다.
이웃집에 놀러갔을 때 토마토를 썰어오면 아예 포크에 손이 가지 않는다.
멀뚱하게 앉아있는 나를 보며 설탕을 치기도 하고 꿀을 끼얹어 주기도
하면서 유혹을 하지만 그래도 외면하여 대접할 다른 과일이 없다는 이웃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 집의 주부가 싫어하는 음식은 애꿎은 다른 가족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내가 싫어하니 우리 집 식탁에는 후식으로 토마토를 내 놓는 법이 없다.

한번은 남편이 옛날을 회상하면서
고등학교 시절, 늦은 밤에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돌아오면
기다리다 지친 누나가 동생 먹으라고 머리맡에
토마토를 잘라서 설탕을 뿌려 놓고 자는데 그 맛이 기똥차다고.
세상에서 그렇게 맛난 건 없다고 마누라를 흘낏 쳐다보며 은근히 해주기를
바랐다. 남편이 먹고 싶다는데 그까짓 걸 못해 줘 싶어 접시에 토마토를 잘라
설탕을 뿌려 내 놓으면 집어 먹다말고 당신은 왜 안 먹어? 하는 눈짓을 하지만
마누라 시선은 텔레비전으로 고정되어있으니 맛있게 먹다가도
혼자 먹는 썰렁함에 그 아릿한 옛 맛이 달아나는지 남긴다.
그 후로는 쌩뚱한 마누라에게 토마토 '토'자도 끄집어내지않는다.

그래도 내가 즐기지는 않지만 가족들의 건강을 위하여
자주 토마토를 주스로 만들어 준다.하지만 나는 그 주스마저도 거의 먹지 않는 편이다.

토마토를 많이 먹어서 건강해지니 병원출입이
뜸하여 의사얼굴이 파랗게 될 정도로 우리 건강에 좋은 토마토를 알면서도
나는 왜 거부감을 가지는가.

유년시절로 거슬러 가보자.
당시 우리 집은 대 가족이었다. 작은아버지 집이 거의 한 집과 다름없이
붙어살아 모든 먹을거리는 공동으로 장을 봐서 나누어 먹었다.
두 가족을 합쳐 15명 정도 되었나보다. 어른 4명을 빼면 아이들이 11명.
많은 아이들의 군것질거리를 배부르게 사 먹일 형편이 되지 않은 궁색한 살림이라
비싼 과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엄마는 버스 두 정거장이나 되는 거리에 있는
청과시장에서 산 토마토를 큰 다라이에 가득 머리에 이고 와서 수돗가에 씻어
큰 소쿠리에 담아놓아 큰 집, 작은 집 아이들은 들락거리며 토마토를 먹게 했다.

떨어지면 며칠 있다가 또 한 다라이를 사오시고.
여름 내내 토마토만 먹었던 기억에 속이 메슥거린다.
다른 형제들은 아무 불평이 없었던 것 같은데 막내인 나는
유독 엄마에게 떼를 썼던 것 같다.
'옴마는 만날 토마토만 사오노 씨..먹기 싫다 말이야. 다른 거 사와'
엄마 치마 자락을 잡고 억지를 써보지만  여전히 우리 집에는 푸르딩딩한 토마토가
소쿠리에서 빨갛게 익어가면서 더운 여름 날 내내 언니, 오빠들의 유일한
간식거리가 되었다.
내 속에서 토마토 거식증이 생긴 이유가
많은 세월의 여름을 토마토를 먹으면서 자란 유년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어른 주먹만한 토마토 하나만 먹어도 포만감이 생겨 다이어트에 좋다는 말에
점심 때가 되어 허기가 지는 것같아  냉장고를 열어 단단하게 잘 익은
붉은 토마토를 끄집어내었지만 한 입 베어먹으려다 말고 잘라서 믹서에 갈았다. 
눈 질금 감고 남루한 토마토의 기억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배가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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