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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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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귀를 한 대 올려볼까.


BY 수련 2005-07-07

방에서 책을 읽다가 마루로 나오니 테레비는 혼자서 총질을 한다.
우리 집 테레비는  주로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쏴대며, 주먹질에 고함만
쳐대어 테레비가 너덜너덜하다.

꼬박 꼬박 수신료를 내는데 우리나라 방송도 좀 봐야지 구시렁거리며
채널을 돌리니 감은 눈이 일어나  잽싸게 리모콘을 뺏어 다시 32번으로 돌린다.
수신료가 그렇게 아까우면 관리비고지서에 부과되는 수신료 란을
칼로 도려내고 은행에 가서 내면 된다나. 누굴 바보로 만들려고...

숫제 요즘은 정규방송의 뉴스마저도 거부하는 울 집 남자 때문에
'굳세어라 금순아'도 못 본다.  신장이식수술을 할건지 말건 지...
친 엄마가 금순이가 딸인 줄 눈치 챘는지 못 챘는지 궁금해 죽겠는데.

안방에 작은 테레비가 한대 있기는 한데 선이 잘못되었는지
먹통이다. 손 좀 봐달라고 했더니  그런 건 전공기사가 해야된다며
자기는 행정업무만 하기 때문에 못한단다.
흥. 그럼 나는 집안의 온갖 잡일을 다하는데 '잡부'네.

다시 울 집 남자의 벌건 눈이 감기기를 기다리며 김영하의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는...'를 읽는다.
엘리베이터에 갇혀 손으로 억지로 문을 조금 열고 문 사이에 끼울 마땅한
기구가 없어 같이 갇힌 여자의 제안에 화자인 남자의 발을 엘리베이터사이에 끼워 놓았다가 조금 더 벌어진 틈새에
몸 전체를 엘리베이터에 끼이고 여자는 하이힐 구두로
남자의 어깨를 딛고 올라서서 매정하게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간다.   여자는 흔적없이 사라지고 혼자 남은 남자는
엘리베이터사이에  낀 몸을 견디지 못해 몸을 빼는 순간 도로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만다. 크크크  웃음이 나온다. 비스듬히 누워있는 남편을 본다.

얄미운 남편이 엘리베이터에 끼인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고,
 나는 남편의 어깨를 구두 뒤축으로 누르며 유유히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오는
여자가 되는 상상을 하니 그 깐 연속극을 안 봐도 후련해진다.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는데 모기 한 마리가 눈앞에서 알랑거린다.
잡으려고 몸을 일으키는데 이놈이 옆으로 날아서 남편의
얼굴 볼에 앉는다. 암놈이구나.

손을 올리다가 잠시 고민에 휩싸인다.
두 손으로 잡으며 남편의 코를 치겠고 한 손으로 딱 치면 한방에
끝내겠는데. 어쩌지..
설움에 받혀 감정을 주체 못하고 남편의 뺨을 사정없이 때리는 모진 아내가 된다?.
칠까 말까.  모른 척 하고 때려?
손을 쳐들고 남편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니
모기가 뒤꽁무니를 치켜들고 흡혈 할 준비를 한다.

일단 퇴근을 하면 남편은 왕이 되고 나는 충실한 시녀가 되어
이것저것 심부름에 그저 옙, 옙 이다. 순종적인 가냘픈 여인이 되다가도 순간
부아가 치밀어 당신은 손이 없어? 하는 표정을 지으면 눈을 계면쩍게 옆으로 돌리며
괜히 사무실이야기를 꺼낸다.
아, 오늘 일이 너무 많아서 엄청 피곤하네. 백수인 마누라는 하루종일 집에서
뭐했을꼬 하는 께적지근한 눈짓에 소금절인 배추가 되어 예의 시녀로 돌아간다.

지금,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좋은 기회인데...  자꾸만 망설여진다.
머뭇거리는 동안 암 모기가 수놈(?)을 공격했나보다.
"딱~" 깜짝 놀라 뒤로 주저앉았다.
내 손은 그대로 올려져있는데 누가 쳤지? 남편이 사정없이 자기 따귀를 때렸다.
얼굴이 벌겋다. 피가 튀었다. 모기가 납작하게 볼에 붙었다.
쳐든 손이  면구스러워 슬그머니 내린다.

어, 모기 잡았네. 역시 당신은 잽싸네유.
휴지를 건네주는데 풍선처럼 팽창해 져있던 웃음이 터져 버렸다.
푸하하하....
에이 씨, 문닫아!.
왜요?. 시원하고 좋은데.. 아 ,가을바람처럼 시원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