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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작품 감상과 비평


BY 수련 2005-06-16

 


-황순원-

 1915년에 태어났으며 평남 대동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경희대학 교수, 예술원 회원을 역임함. 1931년 <동광>지에 시 '나의 꿈'을 발표 한 후 문단에 등단. 1934년 첫 시집 '방가(放歌)'를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활동함. 1935년 <삼사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와 소설을 함께 발표하고, 1940년 단편 소설집 '늪'을 간행하면서 소설에 전념하였다.

광복 후에는 교직에 몸담으면서 <독짓는 늙은이>(1950), <곡예사>, <학>, <소나기>(1959)등의 단편과<별과 같이 살다>(1947),<카인의 후예>(1953), <인간접목>(1955) 등 장편소설을 발표함.


<들어가면서>

황순원의 단편소설 중에서 『소나기』와 『독 짓는 늙은이』를 택하였다.

『소나기』는 중학교 때 읽고 그 후로도 설렘으로 여러 번 읽었던 것 같다. 소년, 소녀기를  지나가면서 성숙의 징검다리를 건너갈 때면 누구나 겪게 되는 정서적 경험을 재확인시키며, 보편적인 정감의 세계로 이끌어내는 『소나기』는 사춘기 시절의 아련한 추억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다시 한번 더 살펴보기로 했다.

『독 짓는 늙은이』를 젊은 아내에게 배신당하고 깊은 좌절감에 체력에 한계를 느낀 송영감이 독을 굽는 가마 안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는 자기희생이 강한 어필로 다가온  마지막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어 기말과제로 선택하였다.


 『독 짓는 늙은이』

 등장인물은 송영감, 아들 당손이, 이웃집 앵두나무 집 할머니가 나오며, 전지적 3인칭 작가시점이며 대화가 별로 없는 간결체이다. 배경은 가을의 어느 시골이다. 

송영감은 독 짓는 늙은이로서, 독 짓는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아 가난하게 살아왔는데, 지금은 병든 몸이다. 그런데 송영감의 아내는 병든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조수와 함께 달아나 버렸다. 송영감은 꿈속에서조차도 도망간 아내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한다. 생각할수록 송영감은 도망간 아내가 괘씸하다. 송영감은 도망간 조수가 이 가을 마지막 가마에 넣으려고 지어 놓은 독을 깨부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 다음 대목에서 송영감이 아들같은 조수 놈에게도 같은 남자로서의 강한 질투를 느낀다.


"이년! 이 백번 쥑여두 쌀년! 앓는 남편두 남편이디만, 어린 자식을 놔두구 그래 도망을 가? 것두 아들놈같은 조수놈하구서...그래 지금 한창 나이란 말이디? 그렇다구 이년, 내가아무리 늙구 병들었기루서리 거랑질이야 할 줄아니? 이녀언!"


그렇다고 독 짓는 일을 그만 둘 수는 없다. 아들 당손이와 살아가기 위해서는 분한 마음을 삭이고 다시 독을 지어야 한다. 그러나 송영감은 독을 서둘러 지어야겠다는 강박관념과 독을 지을 때마다 도망간 아내와 조수의 얼굴이 떠올라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쇠약해진 몸으로 한 가마의 분량을 채우기 위해 독 짓기를 계속하지만 지쳐 쓰러지기가 일쑤이다.

이웃에 사는 앵둣나무 집 할머니는 저러다가 송영감이 죽을지 모른다는 조바심에 당손이를 남의 집에 보내자고 송영감에게 말을 했지만 송영감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허락지 않는다. 여기서 송영감은 아내를 잃고 아들마저 남의 집으로 보낸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없어지는 마지막 보루인 것이다.


"그러나 차차 송 영감의 솜씨에는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구나 조마구와 부채마치로 두드려 올릴 때, 퍼뜩 눈앞에 아내와 조수의 환영이 떠오르면 짓던 독을 때리는지 아내와 조수를 때리는지 분간 못하는 새 그만 얇게 못나게 지어지곤 했다. 도망간 조수와 자기의 크기 같은 독이 되도록 아궁이에서 같은 거리에 나란히 놓이게만 힘썼다. 마치 누구의 독이 잘 지어졌나 내기라도 해 보려는 늦저녁때쯤 해서 불질이 시작됐다. 불질. 결국은 이 불질이 독을 못 쓰게도 만드는 것이다."


독에 대한 욕심을 부릴수록 여드름이 난 조수놈과 도망간 아내의 배신이 독 굽는 일이 자꾸 실패로 남게된다. 송영감에게는 독을 만드는 일은 아들 당손이와 삶의 이유가 되지만 깨어지는 독을 보며 심한 열등감에 삶에 대한 애착이 없어진다. 그 열등감은 점차 허약해지는 건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들을 남의 집으로 보내기로 한다.


"앵두나뭇집 할머니가 애를 데리고 와 저렇게 너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했을 때, 감은 송 영감의눈에서는 절로 눈물이 홀러내림을 어찌 할 수 없었다. 앵두나뭇집 할머니는 억해 오는 목소리를 겨우 참고, 저것 보라고 벌써 눈에서 썩은 물이 나온다고 하고는, 그러지 않아도 앵두나뭇 집 할머니의 손을 잡은 채 더 아버지에게 가까이 갈 생각을 않는 애의 손을 끌고 그곳을 나왔다. 그냥 감은 송 영감의 눈에서 다시 썩은 물 같은, 그러나 뜨거운 새 눈 물줄기가 홀러내렸다. 그러는데 어디선가 애의 훌쩍훌쩍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당손이를 떠나 보내기 위해서 죽은 체를 하고 있던 송영감.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이 보이는 장면이다. 아들을 보내고 나자 그 허전함과 주변에 지어 놓은 독이 하나도 없는 '뜸막속 전체만한 공허'가 가슴에 깃들자 독 가마를 떠올린다. 


"지금 마지막으로 남은 생명이 발산하는 듯 어둑한 속에서도 이상스레 빛나는 송 영감의 눈은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열어제친 곁창으로 새어들어오는 늦가을 맑은 햇빛 속에서 송 영감은 기던 걸음을 멈추었다. 자기가 찾던 것이 예 있다는 듯이. 거기에는 터져나간 송 영감 자신의 독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송 영감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단정히, 무릎을 끓고 앉았다. 이렇게 해서 그 자신이 터져나간 자기의 독 대신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 그리고는 자신의 생명을 마지막으로 발산하려는 듯 독가마 속으로 들어가 흩어진 돌조각 위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는다."


일생을 독 굽는 일에 바쳐 온 송영감은 독 짓는 일에 있어서도 조수의 독은 그대로 있는데 자신이 지은 독이 가마에서 터짐으로 인해 패배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패배에 머물지 않고, 치열한 대결정신으로 향함으로써 그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독만 터지는 것을 안 송영감은 비로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독 굽는 가마 속에 들어가 현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인다. 평생을 독 굽는 일만 해 온 송영감도 아내의 부정에 분노하여 장인의 정신마저 깨어져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전통적인 가치 체계가 무너져 내리는 현실에 대항하려는 송영감의 집념이 결국 좌절되면서 터져 나간 자신의 독의 틈을 메우려는 듯 스스로 독이 되고자 독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스스로 독으로 화신(化身)하려고 가마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충격적이고 깊은 비애를 느꼈다. 장인의 생명이 다하자 자신을 독으로 승화시키는 아름답고 숭고한 작품이라고 감히 나는 평하고 싶다.


『소나기』

 단편 소설이며 성장 소설이다. 순박한 시골소년과 귀여운 소녀가 등장하는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이다. 배경은 어느 시골의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가을이다.

이 작품은 맑고 순수한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소년은 징검다리에 앉아 물장난을 하는 소녀를 만난다. 단정한 옷차림은 도시에서 온 윤초시의 증손녀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린 소년의 가슴은 두근거린다.


소녀가 물 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낸다.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간다. 다 건너가더니만 홱 이리로 돌아서며, "이 바보." 조약돌이 날아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어린 소녀, 소년의 행동이 미소를 머금게 하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소년도 가슴이 설레지만 소녀 또한 보통내기가 아니다. 겉으로는 새침한 척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조약돌을 던짐으로써 표출하고자 한다.  그 날부터 소년은 소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에 쌓인다. 소녀의 그림자가 뵈지 않는 날이 계속될수록 소년의 가슴 한 구석에는 어딘가 허전함이 자리 잡는 것이었다. 그 허전함은 소녀가 던졌던 크기의 조약돌을 주머니에 넣고 주무르는 버릇이 생겼다.

혼자서 물 속에 손도 넣어보고 얼굴도 비춰보는데 하얀 얼굴의 소녀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촌티가 줄줄 흐르는 자신의 까만 얼굴이 싫었다. 소년의 수줍은 사랑이 움트는 것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소녀가 막 달린다. 갈밭 사잇길로 들어섰다. 뒤에는 청량한 가을 햇살 아래 빛나는 갈꽃뿐. 소녀가 걸음을 멈추며, "너, 저 산 너머에 가 본 일 있니?" 벌 끝을 가리켰다. "없다."

"우리, 가보지 않으련? 시골 오니까 혼자서 심심해 못 견디겠다." "저래 봬도 멀다."

"멀면 얼마나 멀기에? 서울 있을 땐 사뭇 먼 데까지 소풍 갔었다." 소녀의 눈이 금새 '바보,바보,'할 것만 같았다.



못 간다고 하면 소녀가 놀릴 것 같아 서슴없이 소녀와 함께 들판으로 달려가지만 다음 장면에서 소년의 마음을 읽어보면 마음한 구석에는 집안 일을 도와야하는 자신이 서글프지만 일부러 잊으려고 하는 모양이 그저 풋사랑에 빠져드는 소년을 읽어 볼 수 있다.

허수아비가 서 있었다. 소년이 새끼줄을 흔들었다. 참새가 몇 마리 날아간다. '참, 오늘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 텃논의 참새를 봐야 할걸.' 하는 생각이 든다. 저만큼 허수아비가 또 서 있다. 소녀가 그리로 달려간다. 그 뒤를 소년도 달렸다. 오늘 같은 날 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 집안 일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 후 소년은 소녀를 오랫동안 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를 다시 만났을 때, 소녀가 그 날 소나기를 맞아 앓았다는 사실과 아직도 앓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 참 후에 만난 소녀는 소년에게 분홍 스웨터 앞자락을 보이며 정표라도 되는 듯 무슨 물이 묻었다고 말한다. 소녀의 당돌한 면을 보는 장면이다. 소나기를 만나 소년이 소녀를 업었을 때 묻은 풀물 자국이었다. 소녀가 이사를 가게된다고 말하고 소년은 이사 가기 전에 호도를 몰래 따서  소녀에게 주려고 마음을 먹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의 주고받는 이야기를 잠자리에서 듣게 된다.   


"글쎄 말이지. 이번 앤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도 변변히 못써 봤다더군. 지금 같아서 윤 초 시네도 대가 끊긴 셈이지.……그런데 참, 이번 계집앤 어린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 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소년 소녀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서정적인 소설이다. 소녀와의 만남, 조약돌과 호두알로 은유 되는 감정의 교류, 소나기를 만나는 장면, 소녀의 병세 악화, 그리고 소녀의 죽음, 이러한 스토리 속에서 사랑이 움트는 소년과 소녀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면서 내면적으로는 한 소년이 소녀와의 만남과 이별을 통하여 유년기를 벗어나는 통과 의례적 아픔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소녀의 죽음은 소년에게 고통을 남기면서 유년기에서 성년에 이르는 성숙의 어려움을 깨닫게 한다. 어린 나이이지만 소년은 소녀와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삶의 질곡을 알게 되고. 소년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해 나가는 성장소설로 볼 수 있다. 오래 전 유년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법한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 하고 싶은 이야기다. 순수함이 느껴지는 막 사춘기에 접어든 시절의 풋풋함과 소년과 소녀가 등장하는 황순원의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성숙한 세계로 들어가는 시련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