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남편의 휴가로 둘이서 전라도쪽으로 계획을 잡고 출발했다. TV 광고에서만 보던 끝없이 펼쳐진 보성 차밭을 구경하고, 해남 대흥사를 둘러보고 근처 여관에서 첫날을 보냈다. 유난히 더위타는 남편이 밤새 에어컨을 틀어놓고 자는 바람에 자다가 몇번이나 깨어 껐지만 어느새 자다보면 다시 커져있고.나는 또 끄고.. 아침에 일어나니 오뉴월에 개도 안걸리는 감기기운에 목이 아파오면서 비실거리기 시작했다. 아침일찍 일어나 내장사를 들러 오후에는 변산반도에 있는 격포해수욕장에 갔다. 절벽이 돌을 차곡차곡 쌓아놓은것 같다하여 '채석강'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인데 기대에 못미치어 조금은 실망은 했지만 서해안쪽이고 마침 오후 6시쯤이라 해가 지는 광경을 보리라 마음먹었다. 다라이에 해산물을 파는 아주머니가 있어 멍게,해삼,소라한접시를 안주 삼아 소주 한병을 시켜 남편과 둘이서 바위위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주거니받거니 소주잔을 기울이니 그맛이 일품이었다. 7시가 지나고 8시가 거진 다되어 해가 수평선너머로 기울기 시작하더니 거짓말처럼 순간에 없어져 버렸다. 인생은 지는해와 같다더니.... 우리들도 저렇게 순식간에 늙어가겠지. 여름 한낮의 뜨거운 해가 넘,넘 미워 차안에서도 이리저리 해를 가리며 다녔는데 막상 지는 해는 아쉬워 저 멀리 없어질때까지 서운한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노라니 남편은 바다물에라도 한번 들어가보자했다. 두 늙다리는 옷입은채로 개구장이마냥 서로 물을 끼얹으며 히히덕 거리고 놀다가 어두워지니 물에서 그만 나오라는 호루라기 소리에 근처 모텔에 방을 하나 잡았다. '바지락죽'이라는 글이 여기저기 식당에 씌여 있는걸 보니 아마도 변산반도쪽의 별미인가 싶어 두그릇 시켜 먹기 시작하는데 이상하게 살살 배가 아프기 시작하였다. 먹다말고 화장실을 서너번 들락날락하느라 죽맛도 모르고 먹는둥 마는둥 방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모기약을 뿌리고 만반의 준비를 끝낸후 분위기를 잡으며 잠자리에 들자했지만 내몸에 손끝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할만큼 배는 아파오기 시작했고 미련하게 나는 조금있으면 낫겠지 하는 안일함에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은 에어컨은 절대 못키게 하는 내 서슬에 대신 선풍기만 자기쪽으로 틀어놓고 자겠다고 했다. 마누라 폼이 아무래도 심상찮아 보였는지 한발 양보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잠이 잠깐 들었다 깨어나니 온몸 마디마디가 다 아프고,쑤씨고,화장실은 계속 들락거리고,선풍기 바람이 내쪽에 직접 오지는 않는데도 그 스치는 바람에도 살거죽이 아팠다. 갈수록 진땀이 나고 감기기운에 머리가 아프고 뼈마디까지..... 꼭 애를 낳을때 배를 트는것처럼 주기적으로 배가 아팠다. 뙤얕볕에 에어컨도 시원찮은 고물차를 몰고 다닌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코를 골며 곤하게 잠든 남편을 깨울 염치가 없어 그냥 날이 샐때까지 참을수 밖에..... 아, 그런데 아름답게 수평선으로 넘어갔던 해는 영영 사라졌을까 아님 뜨겁게 내리쬐는 해를 보며 내내 '저놈의 해' 하며 구박했던 나에게 복수하는걸까. 아니면 서해안이라 해가 지기만 할뿐 영원히 뜨지는 않는가.... 내일부터는 한여름대낮의 햇볕을 온몸으로 다 받아들이리라. 해를 영원히 사랑하리라. 제발 해님이여,떠오르기만 해주기를..... 별의별 생각에 날밝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아픈몸을 웅크리고 한기가 들어 식은땀을 흘리며 이불을 뒤집어쓴채 길고긴 밤을 꼬박 새웠다. 하룻밤사이 헬쓱해진 나를 보더니 '까딱했으면 우리 마누라 밤새 안녕할뻔 했네' 농담하는 남편에게 어서 가자고 채근하였다. 꼭두 새벽에 출발하여 전라도,경상도경계를 지나는 섬진강을 건너 함안에 들어서니 시계는 8시30분. 아파트가 눈에 보이니 통채로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의료원응급실로 직행. '식중독'이었다.해삼먹은게 탈이었단다. 같이 먹은 남편은 왜 멀쩡하냐 했더니 옆에 있던 남편왈 '평소에 당신 심보가 고약해서 걸린거다'란다. 내년여름 휴가때는 혼자 가라했더니 자기도 비실거리는 나하고는 절대로 안가겠단다. 집떠나면 고생이라더니.... 휴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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