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주말에 오라고?, 김치가 없다고?
엄마도 보고싶고 맛있는게 먹고 싶다고?...'"
옆에 앉은 남편 들으라는듯이 큰소리로 일방적으로
혼자서 말하는 엄마의 문답에
어리둥절 한참을 듣고있던 딸은 늦게사 눈치를 채고는
"히히! 우리엄마 스트레스 쌓였구나. 토요일에 서울에오세요.
연극도 보러가게 예매해놓을께요"
냉기가 도는 남편과 계속 있다가는
폭발할것 같애서 어디론가 탈출하고 싶었지만
남편의 허락하에 마땅하게 갈데가 없어
궁여지책으로 밤늦게 딸에게 전화를 했었다.
계획에 없는 갑작스런 서울행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에 지나치는 겨울풍경에 머물기도 하고
엉뚱한 공상도 해보고,
책도 보면서 오랜만의 여유를 부려보며 서울에 도착했다.
저녁에 딸애와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에서
'情 人'이라는 연극을 보러갔다.
보통 연극이나 뮤지컬은 출연 배우도 많은,또
공연무대가 넓은 곳에서만 봐왔던 나는
100 여명정도 앉을 좌석과 4,5미터 거리의 10평 남짓의
무대는 생소했다.
남자,여자 단 두사람만 나와서 1시간 30분동안
극 내용을 완전히 소화해내어 관객을
끌어들이는데 거짓말처럼 배우와 호흡을 같이
하게 만들었다.
남자 배우가 바로 코앞까지 와서 나를 쳐다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것 같애서
오히려 내가 민망하여
눈을 슬며시 내리 깔기도 하였고,
슬픈장면에는 같이 훌쩍거리기도 하고,
배우와 하나가 되어 울고 웃는 소극장에서의
연극 관람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이들이 곁에 없으니 남편의 입맛에 따라
순 토종 한식으로만 먹다가 전문점에 들어가
스파케티도 먹어보고 피자도 한판 사들고
딸과 야참도 즐겼다.
오랜만의 외출이 내 마음과 몸을 겨울속의
봄을 느끼게 하였다.
다시 제자리인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가끔씩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것도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것 같다.
"엄마! 다음에도 속상하면 언제라도 전화해요.
연극표를 예매해놓을께요"
아! 딸이 있어 참 좋다.
2002.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