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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자녀에게 식당에서 술을 권하는 부모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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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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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때만 되면


BY 수련 2005-05-19

오늘 아침 나는
착한 아내마냥 공손하게 남편을 배웅하고는
문닫자 마자 뒷통수에 대고 온갖욕을
다하였다. 대통령도 안볼때는 욕하는 세상인데..

아침밥상에 올라온 반찬중에 김치만 빼고는
저녁밥상에 올리지 마라고 인상을 썼다.
아직 많이 남았는데 어쩌라고.

김치,젓갈빼고는 두번까지는 봐주지만 세번째
올라오는 반찬은 손도 대지 않는다.
어제저녁 먹다남은 찌개,국은 물론 '노'다.
남편과 살면서 제일 힘든걸 얘기하라면
서슴없이 단연코'반찬투정'을 꼽는다.

오죽하면 전날 제사를 지내고 나서
아침에 당연히 제사나물에 탕국을 먹어야 하는데
자기전에 미리 '내일 아침에는 제사음식 안먹는다'라고
엄포를 놓는다.

뭐든 주는대로 암말 않고 잘먹는다는
이웃집 남편들이 너무 부러워서
'누구엄마야! 하루만이라도 신랑 바꿔서 살래?' 농담도 할까.

겨울에는 국 한솥 끓이고 밑반찬을 해놓고 한,두어가지만
새로 만들어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끼니때가 다가오면 노이로제에 걸릴때도 있었다.
그 뿐인가,맛을 가지고도 트집을 잡기 일쑤다.

유치원생도 못한다하면 주눅이 들려 더 못하고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신이나서 더 잘하는데
반찬마다 젓가락으로 툭툭치며 맛이 없다고
하니 다음에는 더 맛있게 만들어야지 싶은 마음이 안생긴다.
살면서 손으로 꼽을만큼 칭찬에 인색하다.
정말 밉상이다.

막상 시장에 가면 뭘해먹을까 몇바퀴나 돌다
한아름 장을 봐와서 펼쳐보면 정작 해먹을게
별로 없다.
저녁 찌개거리,낼아침 국거리,밤참까지...
장보러 가는것도 고역이다.

식구도 단출하게 둘 뿐이니 장에 가서
반만달라던지 조금만 달라하면 남의 속도 모르고
아주머니들의 눈총이 꽤나 따갑다.
그래서 요즘은 장날에는 잘 나가지 않고
백화점마트에서 포장해놓은걸 사온다.

밥상위의 반찬이 신통찮으면
남편의 18번이 나온다.
'집에서 당신이 할일이 뭐있나.소득없이
돌아다니지 말고 남편을 위해서 오늘은 뭘 맛있는걸
만들어 볼까. 그 궁리나 하지'
반찬투정할때마다
나오는 문구지만 들을때 마다 속이 뒤틀린다.

나는 남편의 말한마디에 그저 '예,예'한다.
궂이 따지자면 그말도 맞는말이니까.
집에 노는 여자로서 기가 죽는다.
'먹기 싫으면 먹지마.사람이 밥만먹고 사냐?'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입안에서만 맴돌뿐 내뱉지는 못한다.

남편하고 싸우면 나는 못이긴다..긴 세월을 사는동안
이길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보아도
이길재간이 없다.
스스로 터득한건 '지는것이 이기는거다'도통한 도사처럼
위로하며 산다.

아마 지금쯤 남편 귀가 간지러울꺼다.
실컷욕하고 흉보고 나니 좀 풀리는데
오늘 저녁 반찬은 또 뭘하냐,아이고 괴로워.

냉장고안의 반찬그릇들을 비워내면서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안먹고 사는 방법이 없을까'

그러면 죽어야 되나????


2002.1.71

 

 

 

자랄때 엄마는 대문옆에 붙어있는
'변소'를 마루를 닦듯이 걸레로
바닥을 닦으셨다.
종이도 네모반듯하게 잘라서
통에 담아놓고,나플탈렌을 걸어놓아
그 냄새는 지금도 친정집 변소를 생각나게 한다.

왜그리 매일 씻고 닦는냐고 그러면
그 집의 얼굴이 바로 '변소'라며
항상 깨끗히 해야 된다하셨다.
그래서 '변소'의 거부감을 못느끼고 자랐는데,

결혼을 해서
강원도 전방에 살때 시골집 문간방에
세들어 살면서 화장실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볏단도 재여있고 옆에 소외양간이 있어
사람이 옆에 가면 '엄~메' 울고
휑그러니 넓은곳 한가운데 구멍만 파놓아
볼일 보면 쥐가 쓱 지나가는 푸세식 뒷간.

볼일 보는게 죽기보다 싫어서
요강을 사서 소변은 보지만
대변은 슈퍼에 가서 물건을 사고 양해를
구하여 볼일을 보는데 하루이틀이라야지
결국 변비에 걸려 너무 힘들어 하는
마누라를 보다 못해 남편은 대대장님께
말씀을 드려
새로온 참모가 들어갈 사택에 우리가 이사를 들어갔다.

옆집에 높은 양반이 사니 그 곤혹함이야 말할수 없지만
그래도 죽여줍쇼하고 고개를 숙이고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 우리집 화장실은 내 피난처이자
내 마음의 양식을 쌓는 곳이다.

남편과 다투다가 한마디만 더하면
큰 싸움으로 이어질것 같으면
화장실로 슬그머니 피한다.

한켠에 책이 항상 몇권이 놓여져있다.
에세이집은 단숨에 읽어내려가는
소설과는 달리 음미하면서
읽어야하니 화장실에 두기에는 적합하여
법정스님의 산문집,박완서씨의 에세이,이정하,용혜원님의 시집,...
한시간 넘게 책을 읽고 있으면
기다리다 지친 남편은 혼자서 큰소리를 내다가
어느새 코를 골고 잠들면 슬 나온다.

오늘 새벽녘에도 잠이 깨어 도저히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여 화장실로 들어가 다리가
저리도록 책을 읽었다.

이상하게도 화장실에서
책을 읽으면 집중도 잘된다.
남편은 화장실에만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 마누라보고
아예 그 안에서 먹고 자고 다하라며 악담을 하지만
나는 아랑곳도 않는다.

나도 모르게 친정엄마를
닮아가는지 화장실 청소만큼은 지금까지 반질거리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