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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BY 수련 2005-05-19

오늘 선배들이랑 '집으로'라는
영화를 보고왔다.

엄마의 직장때문에 두어달 산간오지마을에
사는 외할머니에게 남자꼬마애를
임시로 맡겨놓는데 말못하는 외할머니에게
심술을 부리는
꼬마 배우의 천연덕스러운 연기가
초반에는 얄밉기까지 했다.

후라이드치킨이 먹고싶다는 손자의 말에
장에 나가 산나물을 팔아 닭한마리를
사다가 푹 고아서 내미니
이게 무슨 켄터키치킨이냐고 떼를 쓰는 손자를
묵묵히 바라만 보는 할머니의 말없는 연기에
가슴이 아려왔다.

바늘귀를 못꿰어 몇번이나 손자에게 내밀자
귀찮아하며 나중에는 실을 길게 꿰어 내미는 심술을
부리는 손자.
시간이 흐르자
알게모르게 할머니의 수화도 알아듣게되고
할머니의 정을 느끼게 된다.

엄마가 데릴러 온다는 편지가
오자 손자는 외할머니께 '보고싶다''아프다'
글을 가르켜주면서 편지하면 언제라도 달려오겠다하지만
쉽게 글자를 익히지 못하는 할머니가 답답기만하다.

떠날때가 되자 반짇고리를 꺼내어
바늘마다 실을 꿰어놓고, 버스를 타기전에
엽서서너장에 '보고싶다''아프다'라는
글을 한장마다 써서 외할머니께 드린다.


주소란에는 보내는 사람--외할머니
받는사람-----상우

그렇게 씌어진 엽서를 받아든 할머니는
손을 흔들며 떠나는 손자를 말없이 보낸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에는 이 영화를 '우리나라의 모든 외할머니께 바친다'고
했다.

양쪽으로 앉은 선배들도,나도 훌쩍거리며
눈물을 훔치고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엄마도 지금 살아계시면 팔십이 휠씬
넘어 주인공 할머니처럼 허리가
굽었을지도 모른다, 새삼스레 엄마가 그리워졌다.
내가 어릴때 왜그렇게도 엄마는 바늘질을 많이했을까,
무얼 그리도 기워냈을까. 학교에서 집으로 들어서면
항상 미싱에 앉아서 졸던 엄마.
그러다가 내기척에 얼른 눈을 뜨시며
'애야! 실좀 끼워도고'
암말않고 그냥 꿰어주면 될것을 '엄마는 그것도 안보여?'
하며 귀찮아했었다.

나이가 들면 눈이 잘안보인다는걸 왜 몰랐을까.
내가 막내니까 지금의 내 나이쯤 되셨으리라.
나도 작년부터 바늘귀를 못꿰어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가야 보이고 딸아이가 옆에 있으면
아예 딸애에게 바늘과 실을 내밀면서.....

엄마와 같이 노래를 불러야하는 학교행사에는
나이도 많고,노래도 못하고
한복을 입고 비녀꽂은 엄마가
창피스러워 이웃집 젊은 아줌마랑 같이
노래를 했던 기억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엄마를 생각하는 날보다
잊고 지내는날이 더 많은 내 일상에 오늘 '집으로'라는
영화는 가슴밑바닥에 묻혀있던 엄마를 절절히 그립게
하는 하루였다.
살아계실때 좀 더 잘해주지 못함을
뼈저리게 후회해본다.



2002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