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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주례


BY 수련 2005-05-19

계절의 여왕인 5월에
장미꽃향을 가득 머금은채 결혼하는
신부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일것이다.

그 여인을 신부로 맞는 신랑도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임에 틀림이 없을것이고.

오늘이 사월초파일이라 남편에게 가까운절이 있는곳에
등산도 할겸 가보자했더니
뜬금없이 결혼식에 참석해야된다면서
흰와이셔츠와 양복을 내오란다.

그럼 나도 같이 갔다가 마치면 바로 가자했더니
안된다며 오늘 주례를 선다했다.

'아니 당신이 주례를 선다구요?'
누구 주례를 서느냐고 채근하는 내말에는
몰라도 된다며 대답을 않은채
메모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남편이 화장실에 간 사이에 주례를 하기위해
써놓은 메모지를 대충 읽어보니
'...............
늘 불행하다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사람에게
무엇이 그렇게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병원과 어려운이들이 사는곳을 데리고 가서
둘러보게 했답니다.
아픈데 없는 내 자신이 행복하고,집도 없고
끼니도 제때 못먹는 저 사람들보다 내가
더 행복하며 자식과 아내가 있어 행복하지
않느냐. 남들이 가진것만 보지말고
내가 가진것만도 만족해 하며 살면
불행하지않고 행복하게 살수 있습니다.......'

어디서 저리 좋은 말을 찾아냈을까.
그러는 당신은 마누라의 잔소리에 진저리치며
사흘이 멀다하고 반찬투정하면서
새로이 시작하는 신랑신부에게는
좋은말만 골라 한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하기야 미약한 인간이니 어찌 완벽할수가
있겠냐마는 주례사대로만 살아준다면
부부싸움은 평생 안하고 살겠지.
오늘 주례를 서고 오면 마누라 대하는 폼이
조금 달라질려나.

남편에게 양복을 건네주면서 넥타이도
산뜻한걸 골라주고 핀도 깔끔한걸 꽂아주면서
'잘하고오세요'했더니
쑥쓰러운지 '갔다올께' 하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휑하니 나가버린다.

내가 결혼할때의 주례사는 생각도 안난다.
남의 결혼식에 가도 솔직히 주례사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많지 않은것 같았다.
다음부터는 남의 결혼식에 가면 귀담아 들어야겠다.

벌써 남편이 주례를 설 나이가 되었을까.
나이도 들었으니 주례를
설만도 하지만 웬지 얼떨떨하다.
오늘은 남편이 존경스럽다.
집에 들어오면 볼에 뽀뽀나 해줄까?

 

 

후에 남편은 다음부터는 절대로 남의 주례를 서지

않겠단다. 자신의 결혼생활을 반추해보니 새신랑신부에게

말할 자격이 없단다.

2002.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