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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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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수 마누라


BY 수련 2005-05-19

날씨가 6월초인데도
한여름을 방불케한다.

남편에게 오늘부터 반팔 와이셔츠를
입혀 보내야지 싶어 옷을 꺼내니
하나같이 누리끼리하게
산뜻한 맛이 없어졌다.넣을때 분명히
빨아서 넣어두었는데 왜그렇지?
깃도 누렇고 전체적인 색깔도 선명치 못하고,
그렇다고 한,두해 입고 또 새로 살수는 없지.
어젯밤에 8벌의 반팔 와이셔츠를
표백제와 가루비누를 섞어 담가놓았다.

아침일찍 일어나 건져보니 다시 색상이
선명해지고 카라도 깨끗해졌다.
순간의 게으름을 피웠으면 거금이 들어갈뻔 했는데
돈 한푼못버는 백조의 체면이 서는 순간이었다.
깨끗이 헹구어 옷걸이마다 걸어 말리니
오늘 아침에는 괜시리 기분이 좋다.

작은 일이지만 주부로서의
어줍잖은 센스가 먹혀들어갈때의 기쁨.
혼자말로 '역시 나는 똑똑하네'하며 히죽거리니
귀밝은 남편왈 '그 정도는 누구나 다하는거다,착각하지마' 라는
한마디에 여지없이 그 기쁨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나는 입을 삐쭉거리며 푼수처럼 좋아라한다.

결혼하고 여지껏 정장차림으로 출근하니
옷 다리는 일이 내 일상중에 큰일에 속한다.
달리 멋쟁이도 아니면서 하루입으면 구겨졌다며
바지를 훌렁 벗어던지고 와이셔츠도 하루입으면
안입는다는 남편이 얄미워서

'당신이 와이셔츠 한번 다려볼래요? 소매긴 와이셔츠는
더 힘든데 하루 더입으면 어디가 덧나요?'
'집에서 놀면서 그것도 안하고 뭐할건데?'

뻔한 대답으로 돌아올줄 알면서도 번번히
괜스레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찾는다.

소매끝 주름 맞춰가며 긴팔 와이셔츠를 다리다가
반팔와이셔츠를 다리는건 문제도 아니다.
날씨가 오늘도 덥겠다.
베란다에 물이 뚝뚝 떨어지며
가지런히 걸려있는 와이셔츠를
보는 내 마음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2002.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