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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에 수해현장에서


BY 수련 2005-05-19

내일은 49년전에 내가 이세상에 나온 날이다.
엄마말에 의하면 39살에 낳으면서
막내라는 느낌이 들었다했다.
옛날에는 피임을 안했으니 생기는 대로
낳았다는데 미련하게 많이도 낳고 많이 잃기도 했단다.
저녁밥 지으며 불을 때다가 진통이 와서
방에 들어가자마자 수월하게 낳았다지 아마.

내가 돌이 지나고 일주일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내 생일 지나고 6일후면
아버지 제사라서
궂이 달력에 표시하지않아도 아버지기일을
알수가 있다.
막내라서 그랬을까, 자라면서 내 기억으로는
엄마에게 한번도 야단도,매도 맞아본적도 없었고,
철이 날때까지도 엄마의 젖을 만지작거렸던 기억이 난다.

지난 5월에 아들의 생일때
내가 전화로 했던 말이생각났다.
"얘야, 니 생일때는 네가
엄마에게 낳아준 고마움을 표시해야되지않느냐,
너희들 낳는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큰애를 낳을때 내손을 잡고있던 엄마를
쳐다보면서 순간적으로 생각났던게 있었다.

연신 배를 틀며 숨넘어 갈듯이 아파하면서
이렇게 힘든걸 울 엄마는 어떻게 여럿을 낳았을까.
그것도 병원이 아닌 집에서...

오늘 엄마가 그립다.아이들 잘 키워놓고 다투지않고
잘사는모습을 보여주고싶은데 돌아가시고 안계신다.
불효를 저지르다가 효도할려니 돌아가시고 안계신다는
어른들의 말씀도 가슴을 때린다.

결혼하자마자 사니못사니 보따리를 몇번이나
싸들고 오는 막내딸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속상해 하시며 내 생일이
남편보다 빠르다고 생일날
미역국도 못끓여 먹게 했고 챙기지말라시는 바람에
몇년동안 생일없는 여자로 살았었다.
그래도 싸우기만 잘했는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자 그해부터 바로 9월 달력에다
빨간 연필로 동그라미를 쳐놓고
그 밑에다가 "내생일" 이라고 써놓고
달력이 넘어갈때까지 한달내내
의도적으로 식구들이 보게 했는데
작년부터인가 아이들도 없고 한편으로는
유치하기도 하고 아예 표시를 하지않았었다.

어제 테레비에 강원도 수해지역에서 삽질하고있는
군인들속에 얼른 아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간것같아서
전화를 해봤다.
아들놈은 지가 카메라에 찍혔는지는 모르겠고
저녁8시가 다되었는데 하루종일 수해지역에 있다가
그제사 부대로 들어가는중이라며
전화만 걸면 나오는 엄마의 십팔번인'밥먹었냐' 소리에
웃으며 '지금 들어가서 씻고 먹을거예요,
참,모레가 엄마생신이죠?,내일,모레도
아침일찍 나가야 하니까
미리 인사할께요,생신축하드립니다.'했다.

전화를 끊고 좀 있으니 딸애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뭐가 필요하세요? 화장품 사 드릴까요?'
나를 닮아서 야무지지못한 딸애가 엄마생일을
기억할리는 없고 틀림없이 지 오빠가 전화했으리라.

비스듬히 누워있던 남편은 작년과 똑같은 상황처럼
몸을 일으키며
'어, 내일이 당신 기 빠진날이야?.
나는 모렌줄 알고있었는데... '

헛짚는줄 누가 모를까봐.
아이들 전화가 아니면 알리가 없지.
자기 생일도 안챙겨주면 모르는데
마누라생일은 더더욱이 모를밖에..

내일 경남산청에
이번태풍때 떨어진 배 낙과를 줍는일을 도우러
과수단지에 아침7시에 나가면 저녁늦게 돌아올것 같애서
이번생일은 없는듯이 지나갈려고 마음먹었었다.

'오늘 저녁은 하지마.내일 당신 늦게오니까
오늘 미리 근사한데 가서 저녁먹자'
평소 안하던 표정으로 살갑게 말하면서 출근하는 남편.

그래도 곁에서 내 생일을
타의에 의해서지만 억지로라도
챙겨주는 남편과,신통하게 기억을 해내는 착한아들,
덤벙거리지만 내눈에는 이 세상에서 제일 이쁜 딸이 있으니
나는 행복한 여자임에 틀림이 없다.
2002.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