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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이 바뀌어 보면


BY 수련 2005-05-19

오늘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각 시,군의 기관과
여성단체,자선단체들이 공동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사랑의 열매'발대식을 하고 여러명씩
나누어서 한 봉지씩을 들고 백화점과 번화가쪽으로
팔려 나갔다.

나는 한 백화점에 스무명정도 배치되는데 끼여
두명이 한조가 되어 각층마다 사랑의 열매와 모금함을
들고 다녔다.

작년 시골에 있을때는 시장에서,길가에서,
얼굴이 익은 상점에서,또,사무실에 가서 들이밀면
'수고한다'며 선뜻 선뜻 사주는 바람에 추운줄도
모르고 신나게 다 팔았었는데,올해 이사를와서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도회지의 따뜻한 백화점안에서
팔게되어 내심 '잘 되겠구나'했는데
뜻밖의 냉냉함에 초반부터 기가 껶였다.


손님들이나 각 매장에 있는 아가씨들에게
'불우이웃을 돕는 의미로 사랑의 열매 하나만
팔아주세요' 하며 손님의 입장에서, 고개를 숙이며
파는 입장으로 바뀌니 기분이 야릇하다.

손님으로 백화점내 매장을 돌때는
아가씨들과 점장들의 지나친 친절에
쬐끔은 거드름을 피우곤 했었는데,
오늘은 거꾸로 쇼핑하는 사람들과,
점원들에게 '사랑의 열매'를
파는 입장이 되어 각 매장마다 들어갈라치면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에 발걸음이 자꾸 머뭇거렸다.

여름에 옷을 한벌 산적이 있는 매장엘 갔는데
그 많은 손님들을 어찌 다 알겠냐마는 그냥
내색하지않고 빠알간 열매를 들이미니
천원한장을 던지듯이 주면서 이 돈을 누가,누구에게,어디에
쓰이느냐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우리 지역의 각 자선단체가 공동으로 열매를 팔아서
도내의 불우한 이웃에게 전해집니다."
그래도 못믿기우는듯이 혼자말을 궁시렁대는데
자존심도 상하고,돌아서 나오는 뒷꼭지가 화끈거렸다.
다음날 우리가 손님으로 갔을때 그 여자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사뭇 궁금해진다.

대부분이 천원을 내는데 쇼핑을 하는 어떤이들은 아예
우리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두둑한 쇼핑백을 들고
오히려 피해가기도 했고,
또, 어떤 당돌한 점원은 "도지사가 가져오면 팔아줄께요"하며
어찌나 당당히 말을 하는지 열매를 쥔 손이 오그려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다 그렇게 매몰찬건 아니었다.

어떤 아줌마 두분은 수고한다며 일부러 다가와 팔아주기도 하고
잔돈밖에 없다며 쭈삣거리며
오천원을내는 앳띤 아가씨에게
딸 생각이 나서 오천원을 돌려주며
오백원만 받고,열매를 달아주면
오히려 감사하다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그리고,같이온 남자친구에게 앙증맞은
빨간열매를 달아주는 참한 아가씨,

기말고사가 끝나고
가방멘채 백화점에 구경온 고등학생들은
엄마같은 아줌마들이
불쌍해보였는지 꼬깃한 천원을
선뜻내는 기특함..
또,일부러 사랑의 열매를 팔아줄려고 나를 찾아온
이쁜 아우들.....

이래저래 힘이 났고,다 팔고나서는 되려
바자회하는쪽에 가서
손님의 입장으로 싼옷가지들을 팔아주기도 했다.

집에 돌아오는길에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천원짜리 열매를 팔아주면서
눈을 내리깔고 우리를 쳐다보던 매장의 아가씨들을
얄미운눈으로만 바라볼것인가.

아니었다.평소에
나는, 또 우리들은 각 매장을 돌며
가지런히 걸어놓은 옷을 함부러 만지작 거리고
몇번이나 입어보고,또 벗어놓고...그리고,
사지도 않고 나와버렸을때 그이들은 흐트러진 옷들을
정리하여 다시 코디해 놓으며
속으로 우리가 얼마나 미웠을까.

이래서, 또,오늘도 입장이 바뀌어 생각해보는
반성의 하루가 되었다.

다음에 백화점을 들르게 되면 각 매장에서
돌아서 나오는 나를 살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