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일찍 부랴부랴
컴퓨터를 켜고 철도청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오늘 딸애가 내려온다길래
일주일전에 기차표를 예약을 했는데
어젯밤늦게 전화로
못 내려온단다.
동아리에서 엠티를 가는데
빠질수가 없다며
1월3일에 집에가겠다며 코맹맹이 소리로
애교를 떨었다.
나야 한달전에 서울가서 애들을 보고왔지만
남편은 표를 내진 않아도 딸애가 무척
보고싶을거다.
통화중에 남편에게 전달했다간 고함소리가
그대로 전달될것같아 알았다고 끊었다.
아빠의 고함소리를 들으면
지 마음이 좋을리가 있나.
더듬거리며 딸의 대변인이 되어
남편에게 집에 내려오지 못하는 변명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리를 버럭 지른다.
'방학한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내려오고
딸아이가 어딜 쏘다닌다 말이냐'
딸애에게 갈 야단을 고스란히 내가 다 받는다.
나는 완전히 딸애의 방패막이가 된다.
보수적인 남편때문에 중간에서
나는 아이들편에 서서 완충역활을 한다.
아이들을 키울때도
남편은 아이들의 못마땅한점을
직접 말하지는 못하고
내가 대신 악역을 맡았다.
똑같은 말이라도 남편의 한마디는 내가 들어도
몸이 오그러 들 정도로 야박하다.그러니
차라리 내가 악역을 맡는게 낫다.
엄마의 야단치는 소리는 군더더기가 많이 붙어
나중에는 꾸중의 핵심이 뭔지 헷갈리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는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새 딸아이와 나는 남편의
독재(?)에 서로가 감싸주는 동료처럼 변했다.
그러나, 아들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기만의 독립된 공간에서
엄마를 밀어내고 싶어했고,
말수도 줄어들어 아들의 속마음을 알아볼려면
불필요한 말을 얼마나 많이 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래도 아들의 못마땅한점을
전화로 이야기 할라치면
앞뒤도 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나보다
남편의 한마디는 즉효가 나타난다.
아들의 머리가 커갈수록 엄마에게는
힘이 부치는일인데 그럴때마다 남편의 존재가
든든하게 느껴진다.
어젯밤에 기차표를 해약하고
다시 예약할려고했더니
'지가 알아서 내려오게 내버려둬라'
화난 남편때문에 조금전에 다시
1월 3일자로 기차표예약을 했다.
딸애를 기다리다 실망한 남편의 속마음을
헤아릴수 있다. 출근하는 뒷모습에서
서운함이 역력히 나타나는것을 왜 모르겠나.
' 너거아빠 삐~졌다.엠티 끝나면
곧바로 내려와라'딸애의 핸폰에 문자를 남긴다.
집안행사때 집에 내려오는 자식들을
동네 어귀까지 나가서 기다리는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으로 남편도,나도 변해가나보다.
어느새 한해가 다 지나간다.
세월은 소리없이 흘러가고 또 다가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