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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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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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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남자


BY 수련 2005-05-19

결혼을 하고 이사를 한 횟수를
손꼽아보니 25년동안 무려 열네번이나 했다.
초기에 남편이 군인이어서 자주 다닌편이고,
집평수를 늘여 가면서 몇번 옮기고,
남편의 직장때문에 보따리살림이지만
또 몇번을 옮겼었다.

요즘에는 포장이사라는게 있어
이사가는 날 아침까지도 있는 그대로를 두면
포장박스를 가져와서 야무지게 싸고 또 이사가는집에서
원래대로 풀어놓고 가주니 편리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이번 이사에는 내가 직접 싸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었다.
짐을 보관해둔 아파트에 두고 갈 짐과
또 이쪽으로 가져올 짐을 구분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사람의 손을 빌릴수가 없었다.

몇날며칠을 박스를 구해다가 조금씩 짐을 정리할동안
남편은 뭘 도와줄까 하고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집안일은 여자몫이라는 보수적인 의식구조때문에
숫제 관심도 없는것 같았다.
여러번 이사를 했지만 한번도 남편손으로 이삿짐을
싸본적이 없으니까.
언젠가 이웃에게 남편의 무심함을 토로했더니
연약한척하고 뭐든 남편을 시키라고 했다.

글쎄! 하면서도 혹시나 싶어,
방문의 장석이 헐거워져서 문이 덜렁거리기에
"문좀 고쳐줄래요?"
"응.알았다. 내일 고쳐줄께" 며칠을 기다려도
그 내일이라는것이 끝이 없어 화가나서 큰소리로
"문을 고쳐주기는 할거예요?"
"이사람아! 귀찮게 문을 뭐하러 닫냐.그냥 열어놓고 살아"
결국은 내가 고쳤다.

못을 하나 박을때도 일부러 못하는척하고
"세멘벽이라 그런지 못이 안들어가는데
못 좀 박아 주세요"하면
마지못해 일어나는데.
'의자 가져와라,망치,못,심지어 넘어질까겁나는지
옆에서 의자도 꽉 잡아라,한손으로 못을 잡고 박아야
못이 달아나지 않지,못을 슬며시 눌러놓고 한방에
망치를 때리니 못이 낼름하며 어디로 튀어버리질 않나,
그렇다고 그 못을 본인이 줍나하면 아니다.
못 줏어와라.'
이건 못 하나 치는데 온전히
두사람이 매여 있는꼴이다.그러니 안 시킨만 못하다.

한번은 이삿짐을 쌀때
책을 싸라고 시켰더니 못칠 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박스 가져와라,줄가져와라.책 담아라, 매듭지을동안
풀어지지않게 꾹 눌러라.

이러니 차라리 입다물고 혼자 하는게 편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번 이삿짐을 쌀때는 체력이 딸려
자꾸 힘이 들어 짜증이 났다.

남편은 무슨 해외이민가는것도 아닌데
이사가는전날까지 송별회를 핑게삼아
술이 취해 들어오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짐을 쌓아둔채 싸웠다.
"내일 혼자 짐들고 이사가세요.난 안갈테니."
"오냐,잔소리하는 마누라도 이젠 지겹구먼.내 혼자 가지,암 가고말고"
녹음을 했어야하는데 ....

다음날 아침늦게까지 일어나지 못하고 마루에 큰 대자로
잠이 든 남편을 쳐다보니 한숨만 나왔다.

'어휴! 내 팔자야'
속상할때마다 나오는 십팔번인 내 넋두리다.
친구가 거들어주러 왔고,이어 이삿짐아저씨들도 들이닥치니
씨끌벅적한 소리에 그제사 부시시 일어난다.
남편은 마루한가운데 술이 덜깬 상태로 앉아있고,
이삿짐센타 아저씨들은 남편을 피해 짐을 이리저리 나르기
시작했지만 남의집 불구경하듯이 한쪽으로
슬며시 일어나 피해 서 있다.

친구는 킥킥대며 "얘.너거 신랑 진짜 웃긴다.나는 설마 했는데.."
짐나르는 아저씨들 보기도 민망하고,친구보기도 그렇고,
보다못한 나는 " 목욕이나 다녀와요.그동안에
저쪽 집에도 옮겨놓고 올테니까."
"으~응, 그래,그래 얼른 갔다올께"
구세주를 만난듯이 휑하니 나가버렸다.
"킥킥~ 니말이 사실이네.너무 심한거 아니냐.울 신랑은
나는 손도 못대게 하고 자기가 다싸는데..여태 이런식으로
이사다닌거니?"
" 그래. 내 팔자가 이것 밖에 안되니 어쩌냐"

할멈이 이사갈때 데려 가지않을까봐
영감이 이삿짐차 조수석에 먼저 올라앉는다는
우스개소리처럼 짐을 실은 차를 먼저 보내고,뚱해있는
마누라가 예사롭지 않다 싶은지,아니면
전날밤에 큰소리쳤던 말이 생각나는지 얼른 내 가방을
차에 실으며
"얼른 타라, 그래야 이삿짐차와 만나지"
여자의 오장육부는 모두 내 던진채 평생을 살아간다는
엣어른들의 말이 진실중의 진실이다.

낯선곳에 도착하여 마루에 쌓인 짐을 보니
풀 엄두가 나지 않아 느릿느릿 움직이는데
전날의 남편은 어디로 갔는지 열심히 짐을 푸는
낯선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마누라야.이건 오데로 놓을꼬.말만해라 내가 다 할께"
그릇을 꺼내주고,옷을 걸어주고,빈 박스를
챙긴다.내일 해가 서쪽에 뜨겠다.

또,특이한 일은 이쪽으로 이사를 오고난후에
절대로 운전대를 잡지 않는것이다.
길눈이 어둡기도 하지만 처음 서울에 진입할때 혼난후부터는
출근길외에는 조수석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전 같으면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마누라 운전솜씨를 못미더워서 맨정신으로는
절대로 나에게 핸들을 맡기지않는다.
언젠가 내가 운전할일이 있어 잠깐 옆자리에 앉았던 남편은
브레이크도 없는 조수석자리에서 용을 쓰며 발을 내밀어
밟는 시늉도 하고, 자기가 운전선생처럼 차선을
지켜라, 앞차와 거리가 너무 붙었다며 참견하는바람에
서로가 피곤하여 그후로 다시는 남편과 함께 탈때는
운전을 하지 않았다.

경남에서는 경기도나 강원도를 올려면
적어도 일박을 해야하지만
이곳 직장에서는 토,일요일은 쉬어 시간이 많아 여기 있는동안
근교를 다녀보리라 마음먹었다.
컴에서 빼낸 지도로 딸애 학교에도 몇번이나 갔다오고.
북한산에도,영종도에도 다녀왔다.물론 운전은 내가했다.

"우와! 울 마누라 기똥차게 운전 잘 하네"
남편의 속마음이 들여다 보인다.
'나는 길을 잘모르니 마누라 니가 헤메든지 말든지
니 알아서 가라,나는 모르겠다'라는 심보도 있겠지.

남편이 있을때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탓에
컴앞에 앉지 않는게 여지껏 나에게는
불문율이 되어왔다.이번에
이사하면서 인터넷으로 집도 구하고,
낯선곳에서 여행지도도 쉽게 빼내니 말끝마다
"주말에 어디가면 좋은지 컴퓨터한테 물어봐라"한다.

오늘 아침에는 출근하면서 쑥쓰러운듯이
"리포터쓴건데 한글97에서 타자 좀 쳐서 디스켙에 좀 넣어줄래?"
"당신이 해야지, 내가 공부하냐?"
"에이, 저녁에 맛있는거 사줄께. 부탁한대이~"
하고는 앞뒤로 글이 까맣게 쓰여진 종이 뭉치를 내민다.

여태껏 결재를 컴으로 해도 간단하게나마
몇줄 칠줄알았지 이렇게 긴 장문을 친 일이 없었을것이다.
보나마나 독수리 타법으로는 몇시간이 걸려야하니까
마누라 손을 빌릴수밖에...

식탁이 있어도 마루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밥상을 받기를 원했고,
집에 들어오면 물,재털이..잔일을 일일이 마누라
손으로 해주길 바랬던 남편이 지금은 이불도 개어주고,
물도 본인 손으로,밥도 식탁에서 먹는다.

지금 대통령이 바뀌어 정치권에도 개혁도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집에도 개혁의 바람이 일어나고 있다.
속으로 다짐해본다.이 정도에서 개혁의 꼬삐를 늦추면 안되겠지.

아마 남편의 또 다른 공포는 이사온후의 마누라의
말한마디에도 영향도 있음직하다.

"여기사는동안 당신 하는걸보고 교육 끝나면
따라 내려가든지 할거예요.
당신이 바뀌지 않으면 여기서 아이들과 살테니 당신 혼자만
내려가세요.절대 빈말아니니 명심하시길..."

전같으면 한귀로 흘려들으며 '오기싫으면 말아라'
할건데 이상하게도
"내가 바뀌나 안바뀌나 두고 보거래이.내 잘할께"
고향인 경상도에 내려가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지는 모르겠다.
현재로는 양호하지만....

그러면서도, 지금 나는 긴가민가 하고 어리둥절하다.
저 남자가 여태껏 제왕처럼 군림한 내 남편이 맞나?

낯선 남자 하나가 손을 흔들며 문밖을 나서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