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동안 경남으로 혼자 차를 타고
가야하는 두려움때문에 차가 밀리기전에
출발할려고 서두르기도 했지만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설레임에 몇시인지도 모르게
잠이 깼기 때문이다.잠에 취한채 조심해서 내려가라는
남편의 웅얼거림을 뒤로한채 새벽의 여명속으로
차를 몰고 나섰다.아직 바람이 차다.
전날 점검을 마친 차를 한바퀴 돌아보고는
옷깃을 여미고 차에 탔다.
두달만에 내려가는 길이라 그런지 이정표를 보고 가는데도
웬지 낯설여 보여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되었다.
안성휴게소에서 내려 뜨내기마냥 커피자판기 앞에서
어떤 남자에게 경부고속도로가 맞냐고 확인을 했다.
뜨악한 눈으로 맞다며 나를 쓱 올려다보며 말하는폼이
'길도 모르면서 여자가 간크게 차를 몰고 나오냐'
싶은가 보다.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김이 나는 커피를
마시며 대충 남은길의 시간을 재어 보았다.
오전 7시 30분이니 정오쯤이면 창원에 도착하겠다.
점심은 웃음이 헤픈 아줌마의 따끈한
순대국밥을 먹을걸 생각하니 갑자기 식욕이 돋는다.
서둘러 차에 올라 안전밸트를 매고 시동을 걸었다.
두어시간이 지났나 터널앞에 '경상남도 함양'이라는
팻말이 보였다.반가움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터널을 빠져나오자
저쪽 터널밖의 세상과는 다른것 같은 느낌이다.
창문을 열었다.차창으로 밀려들어오는 따뜻한 바람에
온몸에 전율이 이는것 같았다.
긴장함에 라디오도 켜지않다가 그제서야
라디오의 스위치를 켰다.
무슨노래이지? 우리집 남자의 전용곡이 흘러나온다.
♬구름도 울고 넘는~ ♪~~~"
가사도 모르지만 그냥 흥얼거리며 따라 불러본다.
복권에 당첨된 여자마냥 괜히 기분이 좋다.
몇년전에 남편의 근무지였던 진주가 옆으로 지나간다.
조용하고,살기좋은 교육도시라며 관사에 들러 자랑하던
나이든 독신녀인 통통한 김계장의 얼굴이 떠오른다.
진주를 지나 문산으로 들어서면서 곁눈질로
친정부모님이 묻힌 선산을 쳐다봤다.작년에 성묘를
못간 죄책감에 올해는 꼭 가야지 다짐을 해보지만....
저만치 2년동안 살았던 함안이 보인다.
경남에서 다른 지역과는 달리 눈이 많이 오는곳이라
재작년에 새앙쥐처럼
눈을 흠뻑 맞으며 시골풍경을 카메라앵글에 맞추던 기억에
또 웃음이 나온다.닷새장이 어찌나 빨리 다가오던지
아예 장바구니를 들지않고 구경삼아 한가롭게 장터를
한바퀴돌던 그 때가 그립다.
유일하게 살았던 시골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곳이다.
드디어,창원입구에 들어서자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아~ !!!!
어떤 표현을 해야 어울릴까, 8키로나 쭉 뻗은 大路邊에 쏟아질듯
한아름꽃을 안고 줄지어 서있는 벚나무들을 바라보는 마음을...
잠시 신호등에서 멈추어서서 눈이 부신듯이 꽃들의 향연에
넋을 놓았다.
차가 출발하자 앞차가 일으킨 바람으로 벌써 낙화되어
길가에 흩어진 꽃잎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차창으로 부딪히며
눈꽃이 되어 날린다.
창원과 진해는 터널하나만 지나면 20분거리인 근접도시이다.
정확히 말하면 진해는 남편의 고향이고,내 고향은 마산이지만
창원에 오래 거주하면서 오히려 창원이 고향처럼 여겨진다.
남편의 염원대로 진해에 주거지를 정했지만,
친구들과 지인들이 많은 창원에 항상 내 마음은 머문다.
진해에 들어서자 3월말부터 열흘동안 열리는 진해 군항제는
그야말로 온통 시내전역이 벚꽃판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벚꽃을 피우기 위해 진해라는 도시가 생겼을까 할 정도로
인근산에도,길가에도, 대문앞에도,해군사령부안에도.....
市에서도 진해를 상징하는 벚꽃나무를 애지중지하여
각 집앞에 심겨져있는 벚꽃나무를 죽게하면 처벌을 받게 할 정도이다.
그러니, 4월이면 小 도시가 고개를 들면 연한 분홍색의 꽃들로 뒤덮여있다.
차를 세우고 나무밑에서 손을 뻗어 꽃을 따서 냄새를 맡기도 하고
얼굴에 부벼도 본다.
벌써 파란잎이 돋아나면서 꽃잎이 떨어지고있지만
바람에 눈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그 광경 또한 말로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신비롭기만하다.
친구들을 세워놓고 모델처럼 떨어진 꽃잎들을 한웅큼 줏어 공중에
던지게 해놓고 그 순간을 놓칠새라 얼른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던
기억도 새롭다.
해마다 식목일이면 고향에서 벅찬 감정으로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교포들과 나무를 심으면서
그들을 무덤덤한 심정으로 바라보았었는데
겨우 두달동안 고향을 떠났다가 다니러간 나는 이제야
교포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아둔함에 절로 고개가 움추려들었다.
고향! 너,나 할것없이 누구에게나
엄마의 품속같은 포근함이 배어있는 단어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살때는 온갖 체재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고국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 오래 머물게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듯이
저절로 애국자가 된다했던가.지긋지긋하다던 고향을 떠나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들이 그리워서 목이
메인다는 이야기는 남의 얘기가 아닌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