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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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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


BY 수련 2005-05-10

 

남편의 발령으로 경기도로 오면서

아이들과 실로 오랜만에 모여 살 수있겠다 싶어 내심

좋아하면서 감사하게 여겼다.

딸애는 4학년이 되면서 기숙사에서 쫓겨나와 자연히 같이

있게되었고, 아들도 6월 말에 제대를 하여 거의 7년만에

가족이 한집에  기거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 아이들이 잘 먹던 반찬들도 신이 나서 만들어 내고

세끼 꼬빡 꼬빡 챙겨 먹이느라  모범엄마로서의

역활을 열심히 해 내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자 슬슬 내속에 잠재되어있던 심술과

게으름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하는 아들놈은 빨래감을 무시로

벗어내고,(덩치따라 옷 부피도 커짐)

딸년도 슬그머니 겉 옷속에 속옷을 숨겨 세탁기에

집어넣어 놓는다. 처음에는 설겆이도 서슴없이 해 주더니

갈수록 밥 숟가락을 놓자마자 "어 화장실에 가고싶네"

 책 들고 쪼르르 들어가버린다.

'그래, 몇 년동안 스스로 빨래하고 스스로 챙긴것 만도 얼마나

대견한데..또, 내가 계속 같이 살 것도 아닌데..사는 동안 그까짓 설겆이,빨래가

대수냐, 니 들 방도 다 치워주마'

초심에는 그랬었다.  그런데, 달 포쯤 지나면서 부터 

얕은 내 인내의 한계에 부딪혔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입으로 호루라기를 불어

소집을 하였다.  남편도 엉거주춤 무슨일인가 싶어 마루로 나온다.

"야. 너거들 내일부터는 내 말 명심해.

돼지 움막이 되어도 너거들 문지방을 넘지  않을거니 알아서 직접 치우고

제 때 밥 안먹으면 절대 두번 밥 차리지 않을거고, 대신 빨래는 빨아주겠어.

그러나,여름이니 양말은 아예 신지말고,

긴 바지는 최소한 세번은 입을것이며, 빨래감을 뒤집어서 벗어 내었다간 젖은채로

얼굴에 던질줄 알아. 그리고, 아들 놈! 넌 변기에 겨냥을 잘해서 오줌 눠라.

한 방울이라도 옆으로 튀었다간 알지? 어이, 딸! 넌 샤워 후엔 머리카락 하나라도

떨어져있으면 몇끼는 굶을줄알아. 둘 다 물 먹은 컵은 제때 씻어서 엎어놓고..알았니?!!!"

 

숨도 안 쉬고 마구 뱉아내는 나를 보고 그냥 입 다물고 있을 남편이 아니다.

"어이구!, 애들 하고 떨어져 있을때는 남편은 뒷전이고 그저 애들 걱정 뿐이더니

같이 산 지가 며칠이나 되었다고 본색이 드러나냐?. 그라몬 그렇지,당신 심통이

어디가냐? 드디어 너거 옴마 시작했네" 

"그래, 나 이런 여자여, 그러는 당신도 포함 되니 알아서 하슈"

 

나는 마냥 좋은 엄마는 될 수없나보다.

12월이 되면,  넉 달만 있으면 또, 아이들과 떨어져 살건데

그 새를 참지 못하다니....

돌아서서 자책을 해 보지만 그 마음도 만 하루를 지탱하지 못한다.

남편 말대로 심통많은 엄마다.

 

오늘부터 딸애는 개학을 했다. 다시 착한(?) 엄마가 되어

출근한 아빠에 뒤이어 서두르는 아이에게

선식과 함께 충무김밥 몇개라도 먹이려고 들고 따라 다닌다.

순서대로 아들도 도서관 간다며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면서

말끔히 치워진 식탁을 보더니 밥 차리지 말라며 그냥 서서 싱크대위에 있는

김밥을 우유와 함께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운다.

 

언제 폭우가 쏟아졌나싶게 하늘이 맑다.

아이들 방마다 이불을 걷어내어 대 청소를 하고,

딸아이의 침대구석에 끼워져있는 양말,속옷을 집어내고,

어지러진 책들을 주섬주섬 챙기는 내 입가에는 쾌청한 날씨처럼

어느새 씩 웃음이 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