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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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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에게


BY 수련 2005-05-10

우리 집 밭 이야기를 전화로 말을 하려니 못 다 하겠네.
시외 전화라 전화 요금이 엄청 나올 것 같아서
에세이방을 빌려 너한테 수다떨려고 해.

 

우리 밭이라는것이 공주 너희 집하고는 비교도 안되는

황량한 야산자락에 있는 조그만 밭이야.
텃밭처럼 집에서 왔다갔다하면서 푸성귀만 조금 심을까했는데
남편이 가을부터 당장 따먹을 거라며 키 높이 만한
제법 큰 과실수를 주말마다 이 마누라를 끌고 다니며 스무 그루정도  심었어.
나무가 자리잡기도 바쁜데, 열매는 무슨..
이제 겨우 새순이 터져 연 초록빛으로 옷을 입기 시작했어.


네가 꼭 심으라던 은행나무도 심었단다.

너희 집에서 얻어온 은행을 빈 우유팩에 담아 여러 번

전자렌지에  돌려 까먹으니 고소한 맛이 괜찮더구먼.

올해에는 우리 은행을 먹을 수 있을라나. 나도 성급한  우리 남편 닮아 가나봐. 하하하

 

지난달에 대구 언니가 내려와서 상추, 쑥갓, 열무 씨를 뿌려놓고 갔는데
신기하게도 잘 자라서 몇 번 솎아먹었어. 지난주에 딸애가 왔을 때 언니도 같이
내려왔는데 되게 혼났어.
상추밭에 풀은 매지도 않고, 잔디 심은 사이에 올라오는 쑥을 캐내고 있으니 혀를 차더구나. 사람도 살지 않는데 뭐 하러 잔디를 심느냐면서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 한다고 야단맞았어.
 
게다가 창고 옆에 야생화를 심어 작은 꽃밭을 만드는 중인데
언니의 눈에 띄어 또 혼났어. 푸성귀는 심으면 반찬이라도 되지만,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꽃을 심어 열심히 물을 주고있는 나에게
상추밭에나 물을 자주 주래. 그래야 연하고 맛있다면서...

 

그런데, 칭찬 받은 게 한 가지 있어,. 뭐냐고?
고추모종은 잘 심었다고 하더군. 언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풀 매던 남편이 한마디 거드네.
"저 고추요. 아이고 말도 마이소"
남편 말대로 고추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는데 한번 들어볼래?.

 

지난달에 언니가 농사일 아무나 하는 거 아니라고,

 풋고추만 따먹을 수 있게 서너 개만 심으라고 했는데, 

모종 파는 아저씨가 서너 개 심어서 뭐 하려고 그러냐며

이왕이면 많이 심어서 빨간 고추도 따서 김장도 담그면 좋지 하는 말에
 그만 귀가 솔깃해져서 50모종이나 사왔단다.


그래도 마누라가 고추 심는다고 하니까 남편이 밭을 매 주더구나.
심고 보니 간격이 너무 좁아 져서 이틀 후에 다시 빼서 심었었어.
그런데 이웃아줌마가 고추심기 전에 밑거름을 해야 한다 길래 또 빼내서

한 쪽에 모아놓고 밑 거름을 하고 새로 심었는데,
집에 가는 길에 다른 밭의 할아버지가 까만 비닐을 덮고
 그 위에 고추를 심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해야만 풀이 나지 않으며 습기가 있어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에,
우리 고추 밭 앞에서 한 동안 망설였어.

 

다시 비닐을 덮으려면 고추모종을 또 빼야 되는데
그냥 내버려둘까, 아니지 여름 내내  뙤약볕에서 풀을 맬걸 생각하니
 차라리 한 번만 더 고생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며칠 후,
다시 고추를 죄다 뽑아놓고 비닐을 덮고 다시 심고 있는데, 남편이 자꾸 흉을 보더구나.


"  에그그 그 고추 제대로 살려는지 의심스럽네" 
"마 걱정마이소, 내가 우짜던지 살리낀께" 그렇게 큰소리를 쳤지만
몇 번 빼서 다시 심는 과정에서 50모종이 30모종으로 줄어들었어.

 

며칠 전, 남편친구들 모임에서 고추이야기를 하는데 얼굴이 빨개져서 혼났어.
무슨 말이냐면  " 우리 마누라가 고추를 심었는데. 변덕이 나서 뺏다가 다시 심고,
그 변덕에 또 빼서 심고, 그 놈의 고추가 제대로 자랄런지 의심스럽대이"
남편 친구 왈 "아이고. 그 고추가 고생을 많이 했구먼.
 우짠다고 고추를 자꾸만 박았다가 뺏다가 했능교. 그 고추 몸살했겄네"


왁자하게 웃음바다가 되었어. 듣다보니 요상한 외설스러운 이야기가 되어버린거야.
이런 저런 변명에 '고추'라는 단어를 자꾸 말하다보니 나까지 이상해져서 혼났어.

고추 '고'자도 입에 올리기가 부끄러워서 남편에게 눈을 흘기고 말았지만,
그 후로 남편친구가 전화 할 때마다
"제수씨요, 고추 잘 자랍니꺼. 거름을 많이 줘야 빳빳하게 서는데요" 크크크
나이가 들어도 짓궂기는 마찬가지네. 

어제  밭에 가 봤더니 대견스럽게도 앙증맞은 작은 노란 고추 꽃을 피웠더구나.

 

雪里야. 지금도 시골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너의집의 고즈넉한 풍경이 눈에 삼삼해. 기회가 되면 우리 집에도 놀러와.


내일 비 온다는 뉴스를 봤다고 고추밭에 비료를 조금씩 뿌리라고
언니에게서 전화가 오네. 다음에 또 봐. 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