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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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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이로소이다.


BY 수련 2005-05-10

 

오늘 나는 세 통의 전화로  죽을 죄를 저지른 죄인이 되었다.

 

"오늘 할머니 제사지?"

 

같은 전화를 세 번 받고 똑같은 대답을 세 번하고나니

갑자기 큰 죄를 저지른 죄인처럼 자꾸만 가슴이 옥죄어 온다.

 

2 년 전 할머니제사를 할아버지 제사에 합쳤다.

수 년전부터 시고모님 두분이 아직 살아계시지만 한 분은 거동을 못하시고

큰고모님은 연세가 많아 몸이 불편하다는 연유로 부모님의 제사인 할아버지,할머니제사에 오시지 않았다.

 

그나마 남편이 타지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제사도 옮겨가서 지내다보니

형제들도  제사 때마다 오지못하게 되었다.

 

타지에서 제사를 지내던 어느 날, 친구의 어머니에게서 엿들은 소리가 솔깃하였다.

그 어머니의 시동생들이( 다 연세가 많이 들었단다) 형님도 돌아가신지

오래고,애들도 멀어서 내려오지않고,

그렇다고 제사도 가져가지않고 , 우리도 아파쌋고 하니 그냥 제사를

합치라고 했다며 그 해부터 합친 제사를 지낸다고했다.

 

시골에 사시는 분들이 보수적이고 완고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있을까 싶어

슬며시 나도 할아버지,할머니 제사를 합치면 어떨까하고

물어보았더니, 자식들도 아무도 오지않고, 게다가 장손주도 아니면서

제사를 지내는데, 산 사람 편리하게 지내야지 하시면서

추석 날에 제사상에서 고하고, 산소에가서 합친다고 고하면 된다 하셨다.

 

설을 쇠고 한달 후에 시어머니 제사, 또 한 달후에 시할머니 제사,

 두 달후에 시아버지제사....

친척들이 밀어 닥치면 정작 제사지내는 준비보다 자고가는 친척들 치닥거리에

더 신경이 쓰인다. 해가 갈수록 제사가 다가오면 보름 전부터 머리가 지끈거렸고,

자꾸만 일이 두려워졌다.

 

타지에서 남편과 둘이서 일년에 일곱번 제사를 지낼 때는 오히려 편했다.

상에 올릴 만큼만 양을 줄이면 되니 여유를 부려가며 제사장을 보고

제사를 마쳐도 피곤한 줄 몰랐는데 올해 고향으로 이사를 내려오면서

명절 제사부터 형제,친척들이 우리집으로 오게되었다. 한 달후에 또 시어머니의

제사를 치르고.

 

형제들이 몇 년사이에 며느리,사위,손자까지 봤으니

들이닥치는 숫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나게 되어

방 세개.마루까지 이부자리를 펴야하고, 종일 싱크대앞에

서있으니 다리도 붓고, 후유증으로 손목이 한동안 시큰거려 애를 먹었다.

 

그러나, 몇 년동안이라도 편하게 제사를 지냈었고, 또 형제들이 떨어져 있다가

제사 때나 만날 수있으니 그 정도의 힘든 일쯤이야 감수하면 된다.

 

이 년동안 할머니제사를 할아버지제사에 합쳐 지냈는데

새삼 다시 지낸다는것도 우습다.

그런데, 오늘 큰 시누이,작은 시누이,시동생에게 온 전화에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다. 정작 시 고모님들은 가까이 사셔도

이제는 제사도 잊으셨는지 전화도 하지 않으신다.

 

당시 제사를 합칠 때 형제 친척들에게 상의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고종사촌과 남편과 어떤 일때문에 사이가 극도로 안 좋은 바람에 그 불똥이

할아버지,할머니제사에 수년전부터 오시지않는 고모님들도 곱게 보이지 않았었다.

시숙은 몇 년전부터 아예 조상제사참례를 안하는 양반이니 의논할 대상이 아니었고,

시누이들에게는 출가외인이니 부모제사나 오면 된다는 남편의 고집에

남편과 내가 작당(?)을 한 셈이다.

 

그런데, 오늘,

지낼려면 할머니제사 날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평범하게 지나칠려고 했는데......

영 마음이 편치않다. 시동생도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형님에게 취직시켜달라고 나에게 전화질을 몇번이나 했는데

 아무소식이 없으니 오늘 할머니제사때 와서 직접남편에게 말하려했는데

물거품이 되었으니 누나들과 전화로 트집잡는 말들이 많은가보다.

 

복잡한 마음속에 '無心'이라는 단어를 억지로  밀어 넣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