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477

머리통을 쥐어박히다.


BY 수련 2005-05-10

 

콩나물,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조기, 민어, 도미......

모레로 다가온  시어머니 제사 때 사야 할 품목들을

메모지에 쭉 적어 내려간다.

밤, 대추까지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고 다 적어보니 깨알같은 글씨가

빽빽하게 적혀있다. 설에 남은 튀김도 아직 냉동실에 한 봉지가 남아있는데

오늘 저녁에 남편의 눈총을 받아도 신 김치와 튀김, 생선을 넣고 끓이는

일명 "잡탕"을 해 먹고 치워야겠다.

 

나물 다섯 가지, 튀김 5종류, 전, 포, 경상도는 특히 생선을 더 중히 여겨

조기, 민어, 도미가 없어서는 안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시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팔 길이 만한 생선을 올려야만 만족을 하시니 찜 솥에 찔 때마다 꼬리가 걸려

큰 다라이 두개를 맞붙여 쪄냈었다.  조상께 뭐든 크고 좋은 걸 올려야

자손 된 도리를 다한다고 여기고 , 또 이 곳에는 생선이 많이 나는 곳이니

그렇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내 주관으로 넘어오자

생선의 숫자와 길이를 줄여 찜 솥에 들어가기 알맞은 길이로   줄여서 산다.

내 손으로 넘어온 지 18년째, 일년에 7번의 제사를 지내니 제사 음식 만드는 데는

고수라도 자부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작년 한 해 동안은 남편이 교육받는 바람에  멀리서

우리식구끼리 단출하게 제사를 지냈다.

큰 시누이님은 참석 못하는 서운함에 전화로  아무것도 하지말고

물하고 밥 한 그릇만 떠놓으라고 하시지만 그 말은 어른들이 그냥 하는 말인줄 안다.

유교식의 제사는  갖출 건 다 갖추어야한다.

단지 친척들이 오지 않으면 두어가지 가지 수를 줄이고 양을 줄이면 그야말로

누워서 식은 죽 먹기이다.

전 날 제사장을 보고, 당일 날 오후부터 음식을 만들어 놓고

초저녁에는 목욕탕에도 갔다오는 여유도 부릴 정도니까 .

 

더군다나 제사를 끝내고 나서 제사상을 물릴 때  남편이 거들어주어

덕분에 설겆이를 얼른 끝내고 둘이 마주 앉아 제사지내고 남은

퇴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렇게만 제사를 지내라면 일년 열두 달 하라해도

 아무 말 안 하겠다는 나의 너스레에 술이 철철 넘치도록  부어주는

남편은 수고했다며 어깨를 주무는 시늉도 한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편은 누가 보면  집안 일을 절대로 거들어 주지도 않을 뿐더러

남의 앞에서는 아내 칭찬은 고사하고 시댁식구들 앞에서 괜히 퇴박을 주어야만

체신이 선다고 생각하는지 알맞게 간이 맞는 생선을 괜히 짜다느니, 나물이 싱겁다느니

입이 쑥 나온 나를 못 본 채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켜 밉살스럽다.

 

그러던 남자가 작년 한 해 동안 제사 장 보러 갈 때도 같이 가서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어주고, 콩나물도 다듬어주고, 마루도 닦고,

튀김을 만드는 내 옆에서 기웃대며 새우튀김을 입에 넣고는 또 뭐 도와줄꼬 하는 남편에게

제사 때마다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산적을 하나 입에 넣어주며 킥킥거렸었다.

 

작년 년말에 교육을 마치고 고향으로 이사를 와서 올해는 고향에서 명절을 쇠었다.

친척들이 모두 다 오게되니 음식의 양도 많이 해야하므로

 일주일전부터 팔이 아프도록 장을 몇 번이나 보러 다닌다. 

근처에 사는 친척들은 그 날로 다녀가면 되지만  형제들은 차로 몇 시간거리라

자고 가야하기 때문에 방 세 개, 마루까지 온통 이부자리가 널려있는 잠자리가 된다.

 

제사를 끝내고 나도 나는 친정에는 아예 갈 엄두도 못낸다.

시부모가 안 계시니 시누이들에게는 우리 집이 친정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집에서 다시 사촌들이나 시누이들을 맞이해야한다.

시동생의 아이들이 이제는 말귀를 알아들을 만큼 자라니 조금은 덜 부산스럽다.

그런데, 세월 따라 시누이들이 며느리, 사위, 손자까지 다 보았는데 막 걸음을 떼는

 손자들은 우리 집 구석구석을 다 헤집고 다니니 가고 나서 보면

작은 소품들은 제 자리에 제대로 놓인 것이 없다.

조카의 아이들이면 나도 명색이 할머니로 불리는데 어찌 야단을 칠 수있나.

화분이 엎질러지고, 쇼파 위에서 뛰어도 속으로만 어이쿠 할 뿐 겉으로

아이구 잘하네 하며 얼굴은 호호 웃는다.

 

한 차례 태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정신을 빼 놓고 간다.

다음 날 청소하다보면 유리가 붙은 곳은 조그만 손자국의 얼룩이

여기저기 나있다. 오십견으로  팔도 성치 않은데 도와줄런가 싶어

남편을 쳐다보니 당직사령이라서 사무실에 나가봐야  된다며 미안한 표정만

지은 채 나가버린다.

이제 다시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로 돌아왔다 말이지.

사위는 절대 경상도 남자를 안 본다며 씩씩거리면서  청소를 끝내고 나니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의 안온함에 다시 젖어들었다.

 

시간의 흐름을 깜빡 잊고 있다가

열흘 전에 큰 시누이가 어머니 제사날짜를 확인하는 바람에 달력을 보니

어느새 시어머니 제사가 다가왔음을 알았다. 오늘 아침에는

작은 시누이가  손자가 걷기 시작했다며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딸이랑 사위, 손자를 데리고 오겠다 하고,

시동생은 아이들 학교 때문에 동서는 못 오고 자기만 오겠다고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형수님 미안합니다 한다.

 

메모지에 장 꺼리를 적으면서 궁시렁댄다.

'어휴~차라리 아무도 안 오면 얼마나 수월한데....'

에구머니 머리통이 쿵 한다.

시어머니의 야단이 한 대 때렸나보다.

큰 딸 ,작은 딸 ,아들, 손자들이 다 보고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