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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밥상


BY 수련 2005-04-05

"오늘 회식이 있어 저녁을 먹고 갈거야"

밥상을 차리다 말고 받은 전화 한 통화에 맥이 빠진다.

 

된장은 가스렌지위에서 보글보글 끓고있고,

시금치를 살짝 데쳐 참기름을  넣어 고소하게 무치고,

봄에 나오는 부추는 남자에게 좋대나.

부추와 부드러운 겨울초와 섞어 겉절이을 하고,

돼지고기한 덩어리 삶아 얇게 잘라

큰 접시에 생두부와 수육, 씻은 묵은 김치를

맛깔스럽게 담아있는 상을 보니

침 넘어가는 소리가 꿀꺽 난다.

낮에 혼자서 과자 몇조각과 커피 한잔으로 때웠는데

저녁 때가 되니 배 속에서 한 끼 걸렀다고 야단이다.

 

에이 그냥 서서 밥 몇술 떠먹고 말지,

김이 빠져 주섬주섬 다시 챙겨 냉장고에 넣으려다

 말고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아니지, 왜 나혼자는 밥상을 차려서 먹지 못할까'

 

끓고 있는 가스렌지위의 된장에 파,냉이 썰어놓은 걸 넣고

다시 상을 차렸다.

 

김이 나는 밥을 퍼고 한 상 그득 테레비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뭔가 빠진 것 같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다남은 소주가 있네.

와인은 아니지만 소주면 어때. 묵은지에 돼지고기와 두부를 올리고

겉절이와 같이 먹으면 천하일미 안주거리에 럭셔리한 밥상이다.

 

테레비를 켜다말고 오디오에 시디를 넣었다.

아들놈이 내가 좋아하는 노래만 골라 구워준 7080시대의 노래를

틀어놓으니 아, 여기가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

 

멋진 쉬폰 커튼이 드리워진 왕실에 앉은 여왕이다.

소주 한잔이 정량이지만 오늘은 두 잔을 먹어야겠다.

 

오늘 저녁은 너무 멋진 인생이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인 봄이 왔지만, 딸년 때문에 나를 비켜가버려

봄을 느끼지못하고 계속 겨울로만 머무르고 있었는데

나 만의 밥상앞에서 따뜻한  봄이 다가왔다.

 

된장속의 냉이향이  코끝을 향그럽게 만들고

입안에서 맴도는 부추 향 또한 봄을 만끽하게 만든다.

 

다음에 또 이렇게 차려 먹을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짐해 본다.

 

오늘처럼 나를 아끼고 사랑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