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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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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길아~(요크셔테리아)


BY 수련 2005-03-30

지난 번 설을 쇠고 복길이를 남의 집에 보냈다.

복길이의 짐을 다 싸고, 간식과 사료,통조림을 사고, 목욕을 시키고,
단벌인 줄무늬 옷을 입혀 차에 태우고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면서 복길이를 쳐다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복길이의 까만 눈은  그저 외출하는것에만
신이나서 차창밖의스치는 풍경을 내다보다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드디어 그 장소로 가니 소개해준 친구와 그 친구의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에게 복길이를 건네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이를 악물고 차안에서 복길이 짐을 꺼내어 복길이를 데려갈
여자에게 넘겨주는데 친구의 품에 안긴 복길이가
겁먹은 눈으로 껌뻑거리며 나를 쳐다보고있다.

복길이의 눈과 마주치자  자연스럽게 오열이 터져나왔다.
"흑 흑흑 으 으으...."
그 여자가 놀랜눈으로 다가온다
"어머나 어쩌나! 어쩌면 좋아요. 가슴이 아파서 못데려가겠어요"
" 아아아뇨. 데려가세요. 흑흑흑"
저만치 서있는 차안에서 웬 남자아이가 내려 찡그린 얼굴로 나에게 왔다.
"아줌마, 잘 키울께요. 걱정마세요." 눈물을 머금은 얼굴이 선해 보인다.
고등학교 1학년이랬지 아마.
울음은 내 본의와는 다르게 점점 더 큰소리로 터져나오며 멈추어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최대한 이를 깨물며 참을려고 애를 썼다.

차안에서 또 한사람이 내린다.
그 아이의 아빠인가보다.
" 아주머니, 잘 키울께요. 저희도 데려갈려니 가슴이 아프네요. 그만 우세요"
" 아 예 예..   ....."
아무리 진정을 하려고 해도 잘 되지가 않아 그냥 차안으로 들어와
시동을 걸었다.

애써 복길이를 외면 하면서 간다는 말도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봇물처럼 눈물이 흘러내리고 큰소리로 통곡을 하면서 실컷 울었다.

뱃머리에 도착하여 차를 배에 싣고 나니 그제사 마음이 진정이 되는것 같았다.
내 뱃속으로 난 아이를 남의 집으로 입양시켜주고 돌아서는 상황처럼
어쩌면 그리도 가슴이 아플까. 내가그렇게 울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키운 정이 있는데 남의 집에 보내면 가슴이 아프겠지. 하는 정도일줄
알았는데 그처럼 통증이 클줄은....



딸아이의 충격적 발언이후에 여러모로 생각을 했지만
아무래도 복길이를 키울수가 없었다.
딸애는 일년만 엄마가 봐주면 시험쳐 놓고 데려가겠다 하지만
시험치고 합격을 하면?. 그 공부가 어떤 공부인데
복길이 밥 챙겨줄 시간이나 있을라고. 아들놈도 교육이 끝나면
어디로 발령이 날지도 모르고. 그나마 남편이 거제로만 발령이 나지 않았어도
억지를 부려 보겠건만...

관사가 우리집보다 좁은데다 워낙 외풍이 세서 베란다 문을 조금이라도
열수가 없어 복길이의 대 소변이 문제였다. 바람이 들어온다고 문닫으라는 남편의
성화에 할수 없이
베란다로 나가는 문앞에 신문지를 놓으니 우리가 쳐다보는데서는
영 대소변을 보지않아 시간시간 문을 열어주는것도 문제였다.

게다가  관사인줄 아는데 아파트에서 개를 키운다고
수근거리면 난처하기도 하겠고.
그래도,
남편만 참아주면 그정도의 애로는 감수할수가 있다.
아무리 머리를 굴리며 생각해도  남편의 벽을 넘을수가 없을것 같다.

딸애가 방학하면서 복길이를집에 데리고 와서는 방학이 끝나면 다시 데리고 간다고
했기 때문에 남편은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하고
복길이의 아침저녁은 열심히 챙겨주었다.
"어이 복길아. 마이 묵고  너거 누나 따라가거래이"
사료에 통조림을 조금 섞고, 물을 숟가락으로 떠넣어 야무지게 비벼서
복길이에게 내밀면서 꼭 덛부치는 말이다.
밥을 챙겨주는걸 보면 복길이를 좋아하는것도 같은데..도무지 알수가 없다.

'영영 살러 온줄도 모르고 그런 말은 왜 한대?'
그래도 내가 버텨 복길이를 키우겠다고 우겨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그 사건이 터진 것이다. 딸애의 사표건이 ..
난리가 나고 그 휴유증이 혹시라도 복길이에게 갈까봐 걱정이 되는모양이다.
딸애는 아빠의 성격을 잘 아는터 복길이를 데리고 간다고
주섬주섬 복길이 짐을 싸는데 내가 말렸다.
"니가 학원에 등록을 하면 새벽에 나갔다가 밤 12시에 집에 오는데
그동안에 복길이가 혼자있어야 하고 하루이틀도 아닌데 어떻게 할려고 그러니.
그리고, 합격하면 또 어쩔건데. 그냥 내가 알아서 할께"
" 엄마 어디 아는친구집에 잠시 맡겨놓을때가 없을까요. 내가 가고 나면
틀림없이 복길이가 표적이 될건데 우리 복길이 어떻게 해. "
우는 소리를 하는 딸애에게 매몰차게 말했다.
"다시 선생을 해. 그러면 복길이를 남 안줘도 되잖아"
고개를 푹 꺽으면서 복길이을 안고 글썽거린다.

쉽게 한 결정이 아닌걸 알면서 괜히 딸애에게 심통을 부려본다.
마음이 아프다.
"알았어. 단독주택에 사는 친구에게 맡길테니 걱정말고 일단은 올라가"

여러군데를 수소문 한 끝에 친구의 친구집을 결정했다.
무엇보다 온 식구가 다 강아지를 좋아한다고하고 특히 그남편도 좋아한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다.
복길이가 우리집에 오고나서 남편을 쭉 지켜보면 한~번도 복길이의
몸에 손을 대지 않는다는걸 알았다.
간식도 손바닥에 올려 주지않고 던져서 받아먹게하고
밭에 갈때 복길이를 차에 태워 가면 내가 큰 대문을 닫을 동안
버둥거리는 복길이를 차안에 둔 채 혼자만
내린다. 어려서 차에서 뛰어내리지 못해 낑낑거리며 "아저씨 내려줘요" 깽깽거리면,
" 너거 아줌마 한테 내려달라캐라" 덤성덤성 걸어가 버린다.
냉정하다.

그렇다고 개를 진짜 싫어하느냐하면 그건 아닌것 같다.
언젠가 진도개를 키우는 집엘 갔는데 그 개를 쓰다듬기도하고
장난을 치는게 아닌가.
명절에 집에 온 시누이가 자기 집에 키우는
진도개가 새끼를 낳았다고 하니 귀가 번쩍하여 얼른 말을 되받는게 아닌가.
"어, 그 새끼 한마리 도라. 우리 밭에 데려다 놓고 키워야 겠다."
"아직 새끼라서 밭에 혼자 두면 안될건데.."
"그라모 우선 베란다에서 키워 크면 데려다 놓으면 되지"

"뭣이라꼬. 어림도 없는 소리 마이소. 누구 맘대로 . 절때로 안되지"
흥, 복길이는 데려가라면서 웬 진도개는 키운다고. 순간,
칼같은 복수심이 일어 남편과 시누이의 대화를 매섭게 잘라버렸다.
의아한 시누이의 눈초리를 뒤로 한 채 싱크대에서 애궂은 그릇을 떨거덕 거렸다.

설을 쇠고 딸애도 올라가고 복길이도 보내고 영 마음이 허전한데도
남편은 복길이에 대해 일언반구 말한마디도 없다.
딸애가 데려가지 않았다는걸 간간히 내 푸념을 통해-남의 집에 가서 복길이는 잘 지내는지-
눈치를 챘으면서도 묻지않는 남편의 심사가 괘씸하다.

딸아이때문에 문득문득 명치끝이 아리고, 더불어 복길이생각에 가슴이 아파온다.
오늘은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 집 전화번호 좀 알으켜주라. 복길이 잘 있는지 궁금해서.."
"너무나 잘 지낸대.걱정 붙들어 매. 옛주인을 만나면 좋을 게 뭐있냐.잊어라 잊어"
"먼 발치에서라도 한번만 보면 안 될까"
"안돼"
기집애 어쩜 저리도 무정할꼬. 친구는 중간에서 아예 차단을 시켜버린다.
그 집에서 적응을 하고 옛주인을 잊는것이 복길이에게도 좋겠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떼를 쓰고 싶다.
"애, 내가 돈을 한푼이라도 받았니? 공짜로 데려 갔으면 한 번이라도 보여주면 어때"
"전에 내가 말했더니 복길이를 도로 달랠까봐 안된대"
"그러면 나는 보고싶어도 참을테니 추석에 제사지내려 가면 우리집에 데려다놓으라고 해라
우리 아들,딸이 보고싶어하니 한번만 보여주고 그 다음부터는 절대로 보자고 안할께"
"한번 물어볼꾸마"

전화 할때마다 딸애는 복길이의 안부를 묻고 친구가 나에게 말하는것처럼
같은 어조로 너무나 잘있단다로 일관해버린다.
아들과 딸은 잠시 맡겨놓은걸로 아는데 언젠가는 실토를 해야한다.
그동안 어떤 거짓말이 가장 적절할지 고심을 해 봐야겠다.

'바깥에서 놀다가 차에 치였다' 안돼. 너무 슬프다.
'그 집가족,복길이모두가 외국으로 이민을 갔대' 이렇게 말하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