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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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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BY 수련 2005-01-17

 어제는 오랜 만에 경남에 많은 눈이 내렸다.

 

이웃집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눈덩이를 만들어 굴리는 모습이  

우리 아이들과 눈사람을 만들던 오래 된 앨범 속의

영상과 겹쳐져 추억 속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성당에 다녀오는 마누라를 마중 나오는 척 하며

등산화에 모자까지 눌러쓴 남편이

반색을 하며 아파트현관 입구를 막아서며

동네 한 바퀴를 돌잔다.

 

장난스레 눈을 뭉쳐 나에게 던지기에

나도 응수를 하기 위해 눈을 만졌다가 차가움이 섬뜩해

그냥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뽀드득 뽀드득 발을 동동거리며 눈 위를 걸어다녔다.

 

이십 여분 지나니 추워지기도 하고 눈바람에

마냥 바깥에서 서성이기도 뭣하지만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는 하염없이 내리는 눈이 아까워

사방이 유리문으로 되어있는 근처의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한산한 푸드점에 중늙은이 두 사람이

눈을 흠뻑 뒤집어쓴 채 들어서자 아르바이트 학생이 뜨악한 표정이다.

남편은 셀프인줄 모르고 주문만 해놓고 어서 따라 올라오라고 재촉이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고맙게도 이층에 올라가 있으면 갖다준단다.

아마도 부모나이쯤 되는 어른들이라 봐 주는게지.

 

오전이라 이층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다.

창가에 남편과 둘이 앉아 눈 내리는 풍경속으로 들어간다. 

 

묵묵히 눈을 맞으며 서있는 길가의 나무들과 함께 

영화속의 주인공들이 되어보는데.

 

미운 정 고운 정의  해묵은 감정이

들뜬 연애시절의 달콤함은 아니지만

뜨거운 커피와 햄버거를 앞에 두고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속에서

남편을 클린트이스트우드로, 나는 매릴스트립으로

분장하여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식탁에 촛불을 밝히고  감미로운 음악을 틀어놓고

두  손을 맞잡고 그윽한 눈길을 주고받는다.

 

그때 왁자한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이층으로 올라오고,

 조용한 음악은 시끄러운 랩송으로 바뀌고 말았다. 

 뒤이어 또 다른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들이닥쳐

보라 빛 영화는 중도에 멈추고 만다.

 

패스트푸드점에 어울리지 않는

중늙은이를 아이들은 동물원  원숭이를 보듯이 신기해 하고

젊은 부모는 혹여 불륜의 관계는 아닐까하는 눈초리가 역력해 보인다.

흘끔거리는 눈길이 어색한지  남편은 느닷없이 전화기를 꺼낸다.

 

" 혜은아. 아직도 자냐? 여기는 눈이 오는데 거기는 안 오나?

퍼뜩 일어나서 밥 챙겨먹어라.

아빠는 엄마하고 눈 구경하면서 햄버거 먹고있다"

 

남편의 팔장을 끼고 집으로  돌아오니

동네아이들이 내 키 반 만한 눈사람을 만들어 아파트 현관앞에 세워놓았다.

눈, 코, 입을 나뭇잎으로 붙이고 동화 속의 눈사람처럼

빨간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밀집모자를 쓴 눈 사람이 문지기가 되어

우리 부부를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