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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오케이이용원


BY 수련 2004-09-24

             반딧불


여름은 저 만치 물러갔지만 더위는 끈질기게
남아 아직도 한 낮의  햇볕에 얼굴을 드러내기 싫다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놓고 가을볕에는 딸을 내놓는다는
속담에도 며느리도 딸도 되기 싫어 해넘이를 기다렸다가
배추, 무밭에 풀을 매려 나갔다

 

처서가 지나자 초저녁 그림자가 짧아져
금새 어둠이 밀려온다
풀인지 배추 잎인지 눈앞이 어두워
무 잎을 뽑고 놀라고 배추 잎을 뽑아들고 허허 웃는다

 

아직 허리도 아프지 않는데 다리도 저리지 않는데
억지로 어둠에  밀려 미적미적 밭을 등진다

 

어둠 속 짐승 눈으로 둥지 불빛을 찾아 나서는데
눈앞에 무언가 반짝이며 움직인다
아, 난생처음 실제로 보는 동화 속의 반딧불이다
무섬증 많은 나를 위로함인가 이쪽 저쪽 움직이는
작디작은 빛을 따라  허둥댄다

 

동화의 주인공처럼 팔을 뻗어 손을 펴자
내 거친 손바닥에 빛을 내며 살풋이 내려앉은 반딧불
발길을 재촉한다 순한 짐승 눈으로 어둔둥지를 찾아나선다

 

 

 

 

 

                     오케이 이용원

 

 

아파트후문 전봇대에 오늘도 이발합니다 비뚤어진 글이 붙어 있고
이발소에 갈 일도 없는데 실없는 여인네는 두리번거린다
상가와는 동떨어진 저 만치
이발소바람개비가 뙤약볕에 어지럽게 뱅글뱅글 돌고있다
지독한 더위에 오케이 이용원 간판이 땀을 흘리고 활짝 열린 유리문
선풍기바람에 짧은 머리카락들이 춤을 추며 길가까지 퉁겨 나온다

 

어릴 적 이발소 의자에 판자를 걸쳐놓고 겁먹은 아이 하나
거울 속에서 울상을 짓고 앉아있다
이 사이가 벌어진 아저씨의 음흉한 웃음
오른손에 들린 뻔쩍거리는 가위에 아이는 눈을 꼭 감아버린다
가죽허리띠에 쓱쓱 갈아대는 면도날 소리에 오금이 저리고 실눈사이로
마주 보이는 아이 촌스럽게 눈썹위로 가지런히 머리가 모이고
뒤 꼭지가 허전한 아이는  눈에 눈물이 고인다 따끔거린다

 

장기판이 벌어진 이용원 앞 벚나무그늘 평상에
방금 이발을 마친 꾸부정한 아저씨 평상 끄트머리에 드러눕는다
물 뿌린 이발소 바닥에 붙은 머리카락을 빗자루로 쓸어내지만
텅 빈 이발소에서 나가기 싫은가보다 머리카락이

오케이 이용원 간판이 무섭게 지나가는 시내버스에 흔들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