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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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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메기'가 온단다.


BY 수련 2004-08-19

밭을 일구기 전에는  큰 태풍이 와도 아파트 베란다 창에

테이프로 붙이고, 문을 꼭꼭 닫아걸고는  농촌지역이나 침수지역에

피해가 없이 그저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올 해 부터는 우리도 태풍이 온다고 며칠전부터 매스컴이 난리를 치면

밭에 나가  배수가 잘 되도록 골을 만들고,나무받침대를 만들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나무가 넘어지지않게 야무지게 묶었다.

또  창고에 비가 샐까봐 구멍난 못자국에 비닐로 틀어막고,

고추대가 넘어질까봐 끈으로로 단단히 묶으며, 그래도  미심쩍어 매일 아침저녁으로

밭으로 나가서 점검한다.

 

남편도 나도 이제 농군이 다 되었나보다. 이번 여름에는 유난히 덥고, 가물어 햇빛이 쨍쨍한 하늘을 원망스레 쳐다보며, 내가 더운것 보다  밭에서 사는 목마른 생물이 더 안쓰러워  채소에, 꽃에, 나무에 땀을 흘리며 물을 주러 다녔다. 쉼없이 계속 올라오는 풀을 뽑느라 허리가 아파 물리치료를 받으면서도 하루라도 밭에 나가보지 않으면 궁금해서  종종걸음으로

한바퀴 둘러 보고 온다.

 

막 태풍이 우리 지역에 상륙한 어제 저녁때는 연방 비가 쏟아지는데도 남편과 같이

밭으로 향했다. 어린 나무들을 다시 보고,아직 완전히 익지도 않은 고추를

비바람에 행여 떨어질까봐 성급하게 따는 나를 보고 남편은 놀린다.

"이 사람이 알뜰한 농사꾼이 다됐네"

 

아침 내내 테레비에서 태풍피해를 보도하고있다.

비를 맞으면서도 벼논을 둘러보는 안타까운 농군의 마음과  비닐하우스를

끈으로 다시 묶는 그 분들의 심정을 백번도 더 알겠다.

애써 가꾼 작물들이 한 순간에 피해를 입으면 그 속상함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있으랴. 

작은 텃밭을 일구면서 채소를 가꾸는일이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지를 알았다. 

시장에서 할머니들앞에 놓인 상추,가지,고추.오이를 살때 덤으로 더 달래거나

무조건 깍아달라면 살림을 잘 사는건줄 알았던 나는 밭을 일구면서 할머니들이

담아주는대로 받고, 깍지않고 셈을 치루는 넉넉한 아낙이 되어가는걸 보면

흙냄새를 맡으며 개구리와 장난치면서,풀과 씨름하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까.

 

바람이 조금 잔잔해지는걸 보니 태풍이 지나가나보다.

밤새 무사히 잘 지냈는지 밭 친구들에게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