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정채봉--『오세암』
시작하면서
동화는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수많은 창 (窓) 중의 하나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이고, 동화는 세상의 모태이며, 정채봉의 동화는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다시 환기시켜준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정채봉의 동화를 읽는다는 것은 몇 개의 고정된 모습으로 우리 시야에 등장하는 저 세상을 향한 끊임없는 시각 교정의 훈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작품 '초승달과 밤배'의 주인공 '난나'에서 결손가정에서 성장한 소년 정채봉의 모습을 다시 발견하곤 한다. 『오세암』, 이 동화는 어린아이의 맑은 영혼이 부처님의 마음과 같다는 메세지를 전달해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오세암』이라는 뜻은 한자로 쓰면 5 세(歲)에다 '절에 딸린 작은 집 (암자)을 뜻하는 '암(庵)'이 함께 쓰인 말이다.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에 딸린 조그만 암자인데, 원래는 '관음암' 이라는 이름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인조 임금 때부터 오세암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 사연이 이 동화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작품 줄거리
눈이 먼 누나 감이와 다섯살 사내아이인 길손이라는 아이와 둘이 눈이 내리는 어느 날, 소나무 밑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를 탁발 가던 스님이 우연히 들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길손이가 눈먼 누나에게 눈 내리는 모양을 이야기한다. "누나, 눈이 바다처럼 넓게 내린다" 스님은 걸음을 멈추고 두 아이를 자세히 살핀다. 나무로 된 동냥그릇을 들고 쳐다보는 스님의 모습도 누나에게 세세히 알려주는 아이의 눈망울은 가을 아침 물빛처럼 시린 눈총이었다. 나무그릇에 한 닢의 동전을 던져주고 스님은 돌아섰다. 눈 때문에 밖을 내다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탁발을 할 수가 없어 탁발 그릇 속의 눈을 비우고 절로 돌아가는 길에 산자락 길가의 짚가리 속에서 아이들의 키득거리는 소리에 살펴보니 짐작대로 아까 그 남매였다. 집이 없어 갈 데가 없다는 말에 스님은 그냥 두고 가면 얼어죽을 지 모른다는 남매를 데리고 절로 가게된다. 길손이는 절에서 장난꾸러기 짓을 많이 해서 젊은 스님들로부터 미움을 사면서도, 장님인 누나에게 세상일을 더 자세히 설명해 주기 위해 부처님처럼 '마음의 눈'을 뜨고 싶어한다. 스님은 길손이가 하도 장난이 심하여 다른 스님들로부터 눈총은 많이 받게되자 설악산에 있는 관음암에 공부하러 가는 김에 누나 감이는 남겨두고 길손이만 데리고 간다. 길손이는 스님과 단둘이만 지내니 심심하고 답답해 하다가 골방을 발견하게 된다. 문둥병이 걸린 스님이 죽어간 곳이라며, 스님이 절대로 들어가선 안된다고 엄명을 내리지만 길손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골방에 드나들며 놀게되면서 이 동화의 핵심인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 골방 벽에는 머리에 관을 쓴 보살그림이 걸려있었는데, 엄마를 잃은 길손이는 그림 속 보살을 '엄마'라고 부르며 누나에게 말하듯이 그림 속의 관음보살님과 많은 대화를 한다. 어느 날, 스님은 장을 보러 마을에 내려간 사이에 폭설이 내려, 암자로 돌아가는 길이 막혀 헤메이다 쓰러져 정신을 잃게 된다.
산에 나무하러간 농부의 아들에게 발견되어 스님은 마을의 농부의 집에서 보름이나 머무르게 되었고, 아직 산에는 눈 때문에 길이 막혀있었다. 큰절로 간 스님은 누나 감이를 데리고 관음암으로 향했지만 이미 스님이 절을 떠난 지가 50일이나 지난 후였다. 스님과 누나 감이와 관음암에 도착했을 때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길손이를 품에 안고 "이 아이가 부처님이 되었다"라고 말해준다. 바로 그 때 길손이 누나 감이의 눈에는 관음보살님이 파랑새로 몸을 바꾸어 날아가는 것이 보이면서 눈을 뜨게 된다. 길손이의 장례식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이윽고 관음암은, 다섯 살짜리 아이가 부처님이 된 곳이라고 해서 '오세암'이란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작품 분석
이 동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보면 전해오는 불교의 관음영험설화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쭉 읽어가다 보면 감이와 길손이 두 남매의 모습이 눈에 잡히는 듯 하다. 눈먼 누나에게 세상의 모습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모양, 꽃, 새, 그림 속의 관음보살과도 대화를 하는 길손이의 행동이 마치 한 송이 풀꽃이 바람에 가벼이 날리듯이 맑고 선명하다. 어쩌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듯이 어린아이와 같은 티 없이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읽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길손이가 부처가 되었다는 것은, 꾸밈이 없고 거짓이 없는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다섯 살짜리 아이의 맑은 마음의 상태에서 부처님과 같이 해탈을 한 이야기로도 볼 수 있고, 또 한 편으로는 착한 오누이의 눈물겨운 이별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가 깊게 생각해 보면 천방지축인 다섯 살 아이가 부처님의 품에 귀의하게 된 이 이야기는 실은 욕심과 거짓과 집착이 없는 눈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의 참 의미를 알게 해주고 있다하겠다.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오세암'을, 어린이들이 읽기에 좋도록 약간 다듬고 그림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작품 속에서 길손이를 안은 관음보살은 이렇게 말한다. "이 어린이는 곧 하늘의 모습이다. 티끌 하나만큼도 더 얹히지 않았고 덜하지도 않았다. 오직 변하지 않는 그대로 나를 불렀으며 나누이지 않은 마음으로 나를 찾았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개미 한 마리가 기어가는 것까지도 얘기해 주었고,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꽃이 피면 꽃 아이가 되어 꽃과 대화를 나누고, 바람이 불면 바람아이가 되어 바람과 숨을 나누었다. 과연 이 어린아이보다 진실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이 아이는 이제 부처님이 되었다." 기독교의 성경에도 ' 어린아이가 되자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라는 말과 비슷하다. 어른들의 세속에 찌든 마음을 씻으며 맑은 童心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아름다운 동화다.
작가 소개
정 채봉선생님은 1946년 전남 승주에서 태어나 광양에서 성장하셨고,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꽃다발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대한민국문학상, 새싹문학상, 시종아동 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2001년에 돌아가셨다. 작품집으로는 『물에서 나온 새』, 『돌구름 솔바람』, 『초승달과 밤배』...등이 있다. 동화 11권, 생각하는 동화 7권, 시, 에세이 11권 등, 많은 작품을 남겨놓으셨다.
『오세암』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지난달에는 창작뮤지컬로도 공연된바 있다. 또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프랑스에서 열리는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에도 경쟁부문으로 출품한다고 한다. 동화 11권, 생각하는 동화 7권, 시, 에세이 11권 등, 많은 작품을 남겨놓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