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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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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논문


BY 수련 2004-04-18


 
  남자들은 왜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먹을까?


적당한 선에서 손을 내 저으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아침에 일어나기가 편 할거고
실수하지 않아 사람 실없게 보이지 않아 좋을 건데
그렇게도 조절이 안될까. 영원히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로 남을 것 같다.

한동안 심리분석에 대한 책을 읽었었다.


그리고, 남편을 이해해 보려고 나름대로 끌어다 맞추며 아, 그래서...
했지만 오랜 세월동안 끊임없이 반복되는 바람에
아예 내가 심리학자가 되어 술을 먹고 오는 날이면
논문을 써 낼 자료를 찾듯이 남편의 모든 주정을 다 받아들이며
 스스로 도닦는 심정이 되었다.
그러다가 한계에 이를 때는 격정의 도가니로 빠질 때도 있지만...

항상 똑같은 맹세(?)!
" 다시는 술을 안 마신다. 한번만 더 마시면 당신 아들이다"
그 덕에 나는 헤아릴 수도 없는 많은 가상의 아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특이 할 점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술 주정의 행위가 달라지지 않고 같다는 것이다.
두 번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지만 시대 따라 변화가
있어야하는데 이상하게도 예전이나 똑같다. 물론 나이에 비례해서

그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어제는 또 한 명의 아들이 탄생했다.


지나간 영화를 리플레이하여 다시 보듯이 똑같은 상황이 된다.
딩동~  문을 열어도 선뜻 집안으로 들어서지 않는다.
문밖에 선 채로 노래방에서 못 다 부른 노래를 부른다.
♪죽장에 삿갓 쓰고....
예전 같으면 이웃집보기에 창피하여서 억지로 소매를 끌어들이지만
나도 이제는 능구렁이가 다 되었나 보다. 그냥 팔장 끼고 바라만 본다.
세 구절까지 부르더니 제 풀에 발을 문안으로 들이민다.


멍석도 깔아놓으면 안 한다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낮추라고 마누라가 애원하면 그 재미에 더 할건데 멀뚱멀뚱 쳐다만 보니 재미가 없나보다.

현관에 들어서자 또 머뭇거린다.
마누라 표정을 살피며 손에 든 까만 봉지를 내민다.
그리고, 바지주머니를 뒤져 잔돈을 다 꺼집어낸다.
"어이, 마누라! 홋떡도 묵고,이것도 다 니 해라이"
웬 홋떡? 꾸깃꾸깃한 천 원짜리 몇 장을 마루바닥에 던진다.
조폐공사에서 일순위로 잡아가야 할 인물이다.

이제부터 집안에서의 순서는 정해져 있다.


옷도 벗겨줄라치면 오히려 더 옷을 움켜쥐고 벗지 않는다.
내버려두고 화장실 안에서 볼일도 없이 지체한다.
"어, 어디갔냐? 마누라야~" 나와보면
화장실 문 앞에 양복저고리가, 베란다 쪽에 양말 한 짝, 안방 문 앞에
와이셔츠, 넥타이는?? 재주도 좋네. 옷걸이에 걸려있다.

늦은 시각까지 밥을 안 먹었을 리가 만무하지만
마누라가 주는 밥을 안 먹으면 허기가 져서 쓰러진다고 생각하는지
기어이 밥을 달란다. 아니, 남편의 입에서 밥 달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밥상을 내와야한다. 그래야 시비 거리 한가지는 줄이니까.

후딱 먹어치우면 좀 좋을까.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또 술을 달란다. 술에 취하면 술이 술을 먹는다더니 그 말이 맞나보다.
먹다 남은 와인을 내온다.
"마누라도 한잔 묵어라" 술이 넘쳐 상에 쏟아진다.
손에 걸려 재떨이도 엎어진다.
아이고, 어제 카페트를 빨았는데..내가 못살아.


밥상을 앞에 두고 족히 두어 시간은 버틴다. 술 한잔먹고 담배 한대,
밥 한술 떠먹고, 담배 한대.
술이 취하면 앉은자리에서 줄담배를 피워댄다
전에 하도 궁금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어보았다.
취중에 담배를 더 많이 피우게 되냐고.. 그렇단다.
의심 많은 마누라에게 증명이라도 해 주듯이 몇모금 빨고 끄고,
또 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 손가락사이에
끼워져 타는 생담배연기는 얼마나 매운지...인내의 한계점에
도달하려한다. 그러나,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지긋이 누르고
슬그머니 일어나 화장실로 직행. 하릴없이 변기 뚜껑을 덮고 그 위에 앉아있다.

 

"어이 마누라!" 연달아 자꾸 불러댄다. 시끄러워 마지못해 나와서
마주보고 앉는다. 마주치려는 손바닥이 없으니 재미가 없나보다.
" 에 또, 그 놈이 말이야...당신 그 놈 알지?"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 상 밑에서 손가락으로 접으며 헤아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 이제 고만해요. 7번째야. 그 다음은 @#$%^...이 말 맞죠?"
"어, 어찌 아냐? 우와 우리 마누라 도사네"

초인종을 누른지 3시간이 흘렀다.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파 오고, 연달아 하품이 나온다.
연쇄반응처럼 남편도 하품을 한다.
그러면서도 잠을 안 자려고 용을 쓴다.


여러 부류가 있지만 남편은 술을 먹으면 잠을 자는 타입이 아니고
술을 거의 깨고 잘려는 타입이다. 술을 먹고 집에 들어오자
바로 잠을 잔 적이 있던가?. 손가락으로 꼽으려니..한번도 없다.
처음 술버릇이 무섭다더니 고칠 수는 없나보다.
남편은 술을 배웠을 때 처음부터 이런 식이었는지 결혼 초부터 그랬으니까.
'하느님, 부처님, 공자님,'오늘은 제발 조용히 넘어가기를...
이 속물을 불쌍히 여기소서'

 

정규방송도 끝나고 유선을 여기저기 틀다가 외화에 멈추어놓고
또, 슬그머니 화장실로 간다."배가 왜이리 아프지. 뭘 잘못 먹었나?"
"당신은 내가 술만 먹고 오면 배가 아프냐, 화장실이 안방이야?"
'흥, 성질대로 못하니 배가 아플 수밖에....'
이젠 아예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한 쪽 구석에 있는 책을 집어든다.
차츰 '마누라' 부르는 소리가 작아진다.


드디어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어휴~ 이제 살았네,'
큰 대자로 잠든 남편을 보면서 오늘은 천지신명께서 미약한 여자의
청을 들어주셨구나. 감사합니다. 이렇게 나는 또 하루의 감사기도를 올린다.
'서로 마음 상하지 않고, 언성을 높이지 않고, 무사히 넘어감에
감사 드립니다' 그러면, 얼굴 붉히며 싸웠을 때는?? 그래도 감사기도를 한다.
'이 정도에서 싸움이 멈추게 됨을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넘어가는 편리주의자다.

 

상을 치우고, 불을 끄고, 테레비를 끄고, 남편 옆에 누웠다.
바깥의 가로등 불빛에 나무그림자가 집안까지 들어온다.
코고는 소리가 한밤중의 적요와 묘한 대조를 이루며 오랜 세월동안 익숙해진
내 귀에 이제는 자장가처럼 들린다. 아마도 무덤에 갈 때까지
영원히 풀지 못하는 미스테리로 술버릇에 관한 논문을 끝내지 못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