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현씨는 요즘 뭐하고 지내나?"
"전 요즘 국화를 키워요"
갑자기 몸이 굳어지는 병환.
"......"
그래 그랬었지, 언제부턴가 내 책상엔 국화가 피었지......
"그럼. 내 책상에? 수 현이?"
"네. 제가 그랬어요"
"전 팀 장님을 사랑해요"
수 현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짧고 정확하게 말을 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해진 병환에게 그녀는 계속 말을 한다.
"진심으로 팀 장님을 사랑해요"
"팀 장님은 저에게 사랑을 갖게 하셨어요"
말없이 수 현을 보던 병환은 연거푸 맥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얼마나 마셨는지 잠이 오고 있었다. 쫓으려해도 쫓아지지 않는다.
일어나야 했다. 그리고 수 현을 보내야 한다.
"그만 가지 수 현씨?"
말을 하면서도 병환의 몸은 일어나지지 않는다.
"음"
"......"
테이블에 쓰러졌다.
그런 병환을 수 현은 아픈 듯 바라보고......
택시 기사의 등에 업혀 병환이 들어온 곳은 근처의 모텔이었다.
수 현은 병환의 겉옷을 벗기고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병환의 얼굴엔 무엇인가 어두움이 있다.
무엇일까? 저분을 어둡게 하는 것은......
방의 불이 꺼지고 수 현의 옷 벗는 소리가 들린다.
창 밖으로 바람소리는 간간이 들리고, 별도 없는 하늘은 어둡기만 하다.
앞도 안 보이는 숲길을 홀로 걷는다.
허우적거리며 숲길을 헤치며 걷는 병환은 온몸에 상처투성이다.
미로의 숲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다하지만 힘을 쓰면 쓸수록 더욱 깊이 빠져든다.
소리를 지른다. 처절한 몸부림은 이제 끝났다.
멀리서 환한 빛이 들어온다.
자신을 세상에 홀로 두고 떠나간 아내다.
그 날 이후로 병환의 책상엔 국화는 피지 않았다.
대신, 늘 분홍 봉투 한 장이 놓였다.
한번도 열어보진 않았지만 병환은 누구에게서 온 편지 인 줄은 안다.
차곡차곡 그의 책상 서랍엔 봉투가 쌓여갔다.
그만큼 병환에겐 한숨짓는 습관이 생겼다.
어찌 해야하나, 곱고 예쁜 아가씨다.
그러나, 내가 갖을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그렇게 무심히 흐르는 시간은 병환에게도 수 현에게도 적막 속에서 똑같이 흐른다.
마치 병정 놀이의 병정처럼 일상에서 죽은 듯, 제 자리를 지키면서...
그러다 밤이면 생기를 찾는 동화 속 무엇처럼 번민과 고뇌와 얼룩진 모습으로
밤거릴 헤매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6 개월이 지나갔다.
그러니까 병환의 책상에 분홍 봉투가 놓인 지 183일째다.
수 현이 병환 앞에 하얀 봉투 하나를 내려놓는다.
"?"
병환은 아무 말이 없고......
봉투의 겉을 훑어 본 병환은 놀란 듯 수 현을 쳐다본다.
- 謝 職 書 -
"왜?"
"......"
"무슨 일 있나?"
".....그냥,..... 수리해주시면......"
병환은 아무 말 없이 수 현의 사직서를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나하고 얘기 좀 하지"
사무실 한 쪽에 있는 작은 방으로 향하는 병환의 등뒤를 수 현이 말없이 따라간다.
병환은 커피를 수 현 앞에 내려놓으며 마주앉았다.
종이컵엔 빨간 원피스의 미녀가 웃고있었다.
"......"
한참 동안 병환도 수 현도 말이 없다.
이방은 회사 기밀 사항이나 중요한 상담을 할 때 사용하는 방이라서 그런지
방음이 꽤 잘되어있다.
두 사람이 말없이 앉아 있으려니 적막하기까지 하다.
이윽고 병환이 먼저 입을 연다.
"왜?..... 사표를?"
"......"
"말...... 해봐?"
"나, 때문인가?"
"아니에요"
"그럼, 왜?"
"그냥 좀, 쉬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