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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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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온 사랑 겨울로 떠나간다.


BY 詩人의孤獨 2004-02-16

14 편 - 허공, 알 수 없는 미로
봇물이 터져 나오듯, 수 현은 내가 묻지도 않은 자신의 가정사를 술 술술 풀어 놓고있다.
"그 뒤로 아빠가 변했어요, 생전 술도 안 드시고 성실하셨는데..."
"술도 많이 드시고 매일, 술에 취해서 사셨어요"
"옛날에는 그렇게 다정하고 따뜻한 분이셨는데요"
"그랬군"
"그러다 술 때문에 병이 생기고 거의 자리에서 누워 지내셨어요"
"누워서도 술로만 사셨어요"
몇 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온 차는 이제서 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차가 마을 앞에 들어서자 마을 사람인 듯한 사람들이 이곳 저곳에 모여있었다.
차에서 수 현이 내리자. 모두들 한마디씩 안쓰럽다는 듯 던진다.
"불쌍한 것"
"쯧 쯧 쯧"
수 현의 집은 괘 큰 편이었다. 너른 마당 한 쪽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앉아있고
담 장 밑에는 노랗고 하얀 국화들이 피어있다.
마당 아담한 화단에는 이미 시들어버린 분꽃의 열매를 닭이 쪼아먹고 있었다.
병환은 하늘을 보고 있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은 온통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방안에서는 수 현 인 듯한 목소리가 흐느끼고있다.
마을 사람들 중에 마흔 두어 살쯤 돼 보이는 사내가 병환에게 말을 붙인다.
"수 현을 데려다주러 오셨군요?"
"아 네"
"좋은 사람이었어요, 죽은 저 사람"
"예전엔 이 근동에선 제일 똑똑하고, 인심도 후하고 배운 것이 많아서 모두들
무척이나 존경했는데..."
"아들 녀석이 죽은 뒤로는 패인이 돼 버렸지요"
"네. 그랬군요"
"참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이 마을 이장입니다"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이제야 인사를 잊은 듯이 악수를 청하듯 자신을 소개한다.
"네 그러십니까? 전 조 수 현 씨의 회사 사람입니다."
병환이 마을 이장에게 말을 걸었다.
"장지는 정해졌습니까?"
"네. 장지는 정해졌는데..."
"......"
"?"
"그럼, 무엇이?"
잠시 침묵을 하던 이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밖에 쓰러져있는걸 발견했을 때는 너무 늦어서 시신이 굳어 버려서
관에 눕히기가 어려울 거 같아요"

"네 에? 그럼 그냥 두고 있단 말인가요?"
"네 그렇죠"
병환은 갑자기 급해졌는지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이장에게 말을 건넸다.
"제가 망인을 한번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병환이 안내되어 들어간 방에는 한 쪽에 병풍이 쳐져있고 병풍 앞에
수 현이 어머니인 듯한 여인과 함께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병풍 뒤로 들어선 병환의 코에 갑자기 역겨운 냄새가 들이쳤다.
이미 시신은 서서히 썩어가고 있었던 거다.
병환은 자신의 호흡을 천천히 다스리며 할 수 없이 내가 해야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하얀 천을 들추고 들여다본 병환은 가슴이 차갑게 식으며 숨쉬기가 답답해졌다.
웅크리고 있었다.
망자는, 숨을 거두기 전에 추웠었나보다.
산다는 게 얼마나 커다란 고통이었으면 몸이 이토록 망가질까?
사람으로 태어나 어떻게 살아야 이런 비참한 죽음을 벗어날까?
태어난다는 것은 누가 만들었고, 죽는다는 것은 누가 만들었나?
죽은 것과 살아있다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참담했다. 인생이 이렇게 참담하단 말인가?
만일, 인생의 끝이 이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
병환은 망자를 앞에 두고 불경한 생각을 했다는 생각에 좀더 빠르게 손을 움직이고있다.
손을 뻗어 무릎 사이에 껴져있는 망자의 손을 꺼내보려고 했지만 끄덕도 않는다.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만 전해질뿐이다.
다급해진 병환은 사람을 부른다.
"아저씨!"
"네"
옆에서 구경만 하던 이장이 그때서야 대답을 했다.
마당에는 어느새 동네 사람들이 불 구경하듯 방안으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병환은 마을 이장에게 뜨거운 물을 끊여오게 하고서 수 현을  불렀다.
"수 현씨? 잠깐 밖에 나가있어요, 어머니 모시고..."
무슨 일이 있느냐는 듯 병환을 쳐다보는 수 현의 손을 그의 어머니가 잡아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어머니는 병환이 하려는 것이 무엇 인줄을 안다. 그 모습을 딸에게 안 보이려는 것일 게다.
잠시 후 세숫대야 에 뜨거운 물을 들고 마을 이장이 들어선다.
"수건도 여러 장 가져오세요"
밖에선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겹쳐서 들려온다.
뜨거운 물에 수건을 담그고 몇 번을 휘저어 꺼내 꾸욱 짠 다음 망자의 벗겨지지 않는 옷을 가위로 자른 다음 수건으로 망자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병환의 이마에 어느새 굵은 땀방울이 흐른다.
서서히 무릎이 펴지고 있었다.
허리가 펴지고 바로 눕혀졌다.
두어 시간쯤 지나자 모든 것이 끝났다.
긴 숨을 내쉬고 난 후 땀을 닦아내면서 병환이 말한다.
"옷 가져오세요"
망자의 옷을 말함이다.
병환이 염을 하는 동안 밖에선 수 현의 흐느낌이 계속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미리 준비해 두었던 관을 여러 명이 들고 온다.
오동나무 관에 망자를 누인 후 병환은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동전 한 잎을
망자의 머리맡에 넣어준다.


"힘겨운 세상 가실 때 노자나 하십시오"


병환은 잠시 망자에게 기도를 했다.
< 고달픈 세상 서럽도록 가난하고, 당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 못할 만큼, 넓고 큰
생의 바다에서 당신의 인생보다, 가족이라는 사슬로 처절하게 얽매인 운명 앞에
헌신적으로 모두 받치시고 이렇게 지친 육신을 지탱하셨다가 이제서 야 편히
쉬시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관의 뚜껑 을 덮고 새끼로 묶고서야 모두 끝이 났다.
갑자기 갈증이 병환을 몰아 세운다.
그래 술이나 한잔하자......
이장과 마주앉은 병환은 이장이 주는 데로 받아 마셨다.
부산 한소리에 눈을 떠보니 차안에 누워있었다.
이장이 주는 술을 무작정 받아 마셨던 병환은 잠시 잠이 들었나보다.
오늘이 상여가 나가는 날 인가보다.
하얀 꽃상여가 와있다.
만장 기가 바람에 힘차게 휘날리고 있다.   
저만치 햇살이 병환의 눈을 부시게 하고 갑자기 현기증에 잠시 머리가 멍해진다.
상여는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논 길을지나 낮은 산을 오르고.
이윽고 상여가 내려진 곳엔 관이 묻힐만한 구덩이가 파져있다.


삶이 고단하여 가는 인생아
굽이굽이 살아온 길 험키도 하고
놔버린 손아귀엔 미련도 없어
질경이 뿌리처럼 살지 못했던
네 삶이 무던히도 섧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