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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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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온 사랑 겨울로 떠나간다.


BY 詩人의孤獨 2004-02-16

10 편 - 꿈, 흐르는 갈증
그녀의 작은 어깨가 병환의 품엔 차고도 남을 만큼 작다.
<이렇게 얇고 작은 어깨였구나.>
혜란의 작은 입술이 병환의 입술과 닿았다.
눈을 감고 긴 입맞춤을 하는 그녀의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긴 입맞춤에 지금까지의 그리움을 모두 담는 듯
병환의 목을 감싼 두 팔에 힘들었던 그리움의 여정을 실었다.
햇살에 비춘 두 사람의 모습이 유리창에 무지갯빛으로 투영되고
나무 가지에 앉은 참새 한 마리 재잘거림이 들려온다.
혜란은 달리는 자동차 옆 좌석에 앉아서 병환의 모습을 보고있다.
차는 길가의 낙엽을 공중에 띄우며 강화로 가고있었다.
때늦은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달리는 자동차를 향하여 달려든다.
김포 시내를 조금 벗어나자 길 양쪽에 포플러나무가 길게 늘어서서
시원한 바람을 만들고 있었다.
혜란이 강화에 가고싶다고 졸랐다.
길가의 가로수 잎이 많이 떨어져 있었지만 지금 혜란에겐 하나도 쓸쓸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산한 바람이 불면 포근히 감싸줄 사람이 있어 좋았다.
강화 읍내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일요일이다.
혜란은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이 너무 좋다.
혼자 있을 땐 싫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애타도록 그리워하던 병환과 함께 있다.
아니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병환과 함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병환은 그렇게 좋아하는 그녀가 오히려 안쓰럽다.
난, 또 떠날 것인데......
어찌하나,
"빨리 와, 병환 씨. 우리 저거 보자"
병환이 잠시 머뭇거리자 마치 어린아이가 재미난 구경거리를
찾은 듯 신나는 목소리로 잡아끈다. 많은 상점들을 재미있다는 듯
병환의 손을 꼭 잡고 돌아다니는 혜란이 오늘은 사랑스럽다.
병환보다 세 살이 많아 혜란은 서른 아홉이다
그렇지만 지우는 이제 갓서른이 된 것처럼 앳띤 얼굴이다.
"병환 씨  이게 더 맛있는 거래"
바닷가에 자리잡은 아담한 횟집에서 둘은 마주 앉아있다
주인이 맛있는 거라 가르쳐준 부위를 젖 가락으로 집어서 병환의 입에 넣어주며 말한다.
"아니 같이 먹어요"
"아냐 병환 씨 먼저 먹어"
"후 후 후 좋아 그럼 같이 먹어요"
저 만치서 노을이 서서히 바다에 붉은 물감을 풀어놓고 있을 때 
혜란의 얼굴에 노을처럼 빨간빛이 아름답게 비추고있었다.


마치 분홍 코스모스 그 빛깔처럼......
돌아오는 길에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다.
아니 아무 말도 필요치 않은 것이다.
병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혜란도 아무 말이 없다.
그냥 내 남자의 내 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랬었지
병환이 어느 날 혜란에게서 떠났을 때
혜란은 세상을 잃은 듯이 모든 것이 허무했지
마음으로 의지했던 사람, 그 사람이 그녀의 곁에 없다는 것은
절망으로 다가가는 것이었지.
아침과 저녁 밤과 낮이 없어지고 별마저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지.
언제부터인지 혜란은 병환을 의지하고 있었다.
병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전해주는 그런 사람이다.
어떤 아픔이던 어떤 상처든 그는 주는 대로 가슴에 조용히 담아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볼수록 가깝고 볼수록 따듯한 사람.
내가 많이 힘들고 아파할 때 말없이, 아닌 듯이 내 아픔을 걷어간 사람
내 아픔을 자신의 가슴에 대신 담으면서도 아닌 듯이 작게 웃어버린 그런 사람.
떠날 때 하얀 종이에 시 하나 그려놓고
말없이 사라진 그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얼마나 원망했는지...
하지만 나중에야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지
그의 가슴엔 너무나 많은 슬픔으로 가득 차서 내 곁에 있으면
내게 그 슬픔이 묻어 날까봐 날 위해 떠난 것 인줄
어리석은 나는 그가 떠나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걸 깨달았지.
그의 남겨진 한편의 시를 내가 이해하기엔
너무나 힘든 시간이 필요했던 거지.


전 세상의 그늘이랍니다.
당신의 빛에 가려진
따사로운 그대 웃음 아래서
작은 기쁨을 지키렵니다.
어느 곳에 내 영혼 둘지라도
당신의 성함을
나는 꼭 쥐고 있을 테니
당신은 행복하십시오.
나는 당신을 잊지 않을 테요.


어느덧 차는 혜란의 집 앞에 도착했다.

병환의 어깨에 기대고 혜란은 잠이 들어 있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받쳐들고 가만히 어깨를 빼내고
운전석에서 내린 그는 반대쪽 차 문을 열고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안아들었다.
혜란은 가벼웠다. 어린아이를 안아 드는 것처럼 너무나 가벼웠다.
벨을 누르자 아줌마가 뛰어나온다.
2층 그녀를 침대에 천천히 눕히고 병환은 그녀의 옷을 벗겼다.
겉옷을 벗긴 그는 이내 화장실로 향한다.
작은 수건에 따뜻한 물을 적셔 잠자는 혜란의 눈가부터
행여 그녀가 깰 새라 조심조심 눈가부터 닦아간다.
눈가를 닦고 볼을 닦고 고운 입술을 닦았다.
그렇게 혜란의 온몸을 닦아준 병환은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
편한 웃음 머금고 잠이든 어린아이처럼 순한 혜란을 내려다본다.
인천에서 회사에 찾아와 내게 시를 보여 달라던 그때가 생각난다.
그땐 시 가 보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었다.
이 사람은 사람이 그리워서 온 것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곁에서 자신의 설움을 느껴줄 사람.
일곱시간 동안 그녀가 한말은 고작 열 마디 나 될까?
그랬다 지우는 그렇게 사람이 그리웠을 것이다.
송도 호텔에서 그녀가 잠이 깨었을 땐 난 침대 밑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었나보다. 내가 깨어났을 땐 내 어깨 위엔
그녀가 덮던 얇은 이불이 올려있었고.
언제 불렀을지도 모르는 식사가 준비 되 있었다.
"미안해요. 제가 어제 실수했어요"
"아니, 괜찮아요"
식사하는 내내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병환을 회사 빌딩 앞에 내려주고 그녀는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