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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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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온 사랑 겨울로 떠나간다.


BY 詩人의孤獨 2004-02-16

9 편 - 꿈, 흐르는 갈증
"이젠 식사해야지"
문득 생각난 듯 그녀는 병환의 팔짱을 끼며 주방으로 내려온다.
말없이 밥을 먹는 병환을 혜란은 먹을 마음도 없는 것처럼 한없이 병환 만 바라본다.
"어서 먹어요"
"알았어"
"이거 먹어봐 아침에 내가 했어"
젓가락으로 도라지 무침을 집어 병환의 입에 넣어주며 행복에 겨운 얼굴로 묻는다.
"맛있어?"
"네"
병환의 등뒤로 따사로운 가을 햇볕이 들어오고 있다
혜란의 얼굴에 비친 가을빛이 눈부시다.

이렇게 좋은날이
이런 날 이 내게도 올 줄은 몰랐습니다.
눈부시게 맑은 햇살이
내 것이 될 줄 몰랐습니다.
당신의 따뜻한 눈빛이
나의 것이 될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2층 창가에 서서 정원을 내려다보는 병환의 등뒤에서 혜란은
병환이 즐겨 마시는 녹차를 다리며 병환의 넓은 등을 바라보는 기쁨을 새삼 느끼고있다.
이대로만  이대로만 영원할 순 없을까.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
"뭐가?"
"은행잎이요. 곧 다 질 거 같아요"
혜란은 이제야 가을을 느낀 듯 병환의 곁에 다가서서 정원을 내려다본다.
작은 잎을 가진 청 단풍나무 곁에 키 작은 은행나무에서
이제 막 대 여섯 개의 은행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 그래 가을이구나.
여태 계절이 바뀌고 있는 것도 몰랐구나.
정원엔 온통 은행잎과 단풍 그리고 담 장 너머에서 날아온 플라타너스의 잎이 싸여있었다.
내일은 수목원의 아저씨를 불러 정원의 나무들에게도 겨울나기를 준비해줘야겠구나.
"우리 정원에서 내가 제일 아끼는 게 뭔 줄 알아 병환 씨?"
"......"
"저거야"
귀엽게 생긴 동자와 소녀의 어린아이 크기의 조각상을 가리키며 그녀가 말했다.


"후 후 후"
그것은 얼마 전에 병환이 깎아 만든 것이었다
두개의 조각상, 동자와 댕기 머리를 한 조각상이다.
"날마다 눈뜨면 난, 제네 들 과 얘기해"
"자기가 만든 거니까 저기엔 자기의 영혼도 함께 있을 거니까"
"참, 내 차는 어디 있어요?"
짐짓 생각난 듯 묻는다
"내가 갔다달라고 전화했어"
"그래요?"
"차 마셔 병환"
적당히 온도가 알맞다.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녹차의 향내를 음미해본다.
두 손으로 감싸쥔 녹차 잔이 앙증맞다.
혜란의 순한 미소처럼 취향이 닮아있다.
"그동안 어디에서 뭐했어?"
진작부터 묻고싶었던 말이다.
"그냥 여기저기 떠돌았지"
"산엔 안 갔어?"
산은 병환이 예전에 가끔 가서 수양을 하던 곳을 얘기한다.
"잠깐 들렸어요, 산에도"
"그냥?"
"네"
"그리고?"
"후 후 후"
"그냥, 여기저기요"
"내가 기다리는 거 알고있었죠?"
"산에도 찾아갔었어요"
"......"
"오후엔 비가 올 거 같네요"
"?"
"왜?"
"그냥 바람이 그래요."
"병환 씨!"
"네"
"저......"
"?"
"나...... 한번만 안아 줘"
혜란이 병환의 가슴에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