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몸에 가시가 돋아나고 있다. 처음엔 소름처럼 올라오던 피부가 조금씩 단단해져 이윽고 날카로운 가시가 된다. 피부가 날카로워져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으로 가시는 하나 둘 늘어서 온 몸이 가시로 뒤덮여 지고 있다.
남자가 여자를 관찰한다. 남자의 시선이 여자의 얼굴을 훔쳐보는 걸 느끼면서 피부는 예민하게 경직된다. 사람의 첫 인상은 만난지 5초 만에 결정되어지니 남자와 여자는 이미 나란히 앉은 지 30분도 넘어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결정이 났다. 남자는 여자에게 남자는 ‘자연의 빛 갈이 좋습니다.’라고 말을 건넸다. 여자는 마지못해 ‘예’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자동차는 늦은 오월의 초록 속으로 달려간다. 여자는 바위에 부딪치고 거친 물살을 타고 흐르는 강물이 되었다가, 새털처럼 가볍게 날아도 올랐다. 이름모르는 들꽃위에 바람으로 사뿐히 앉았다. 몸에 돋아난 가시가 제살을 뚫고 들어 올 때 여자는 강물이 되었다. 모래톱에 오래도록 앉아 몸을 말리다가 해가지고 물의 손이 몸을 툭툭 건드리면 슬그머니 일어나 다시 길을 떠난다. 강물에 흐르고 구르고 부딪치고 휩쓸려서 몸에 가시는 매끈하게 되었다. 남자의 눈이 여자를 슬며시 건너다본다. 여자의 몸에 모든 털이 서고 가시가 다시 돋아나려 한다.
감색계열의 옷을 입어 신뢰감이 느껴지는 남자, 제스처를 적절히 사용하여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대화 중 상대방의 몸짓을 따라 하거나 긍정과 칭찬을 많이 해주어 금방 친해질 수도 있어 보여 처음 만났을 때 남자가 ‘반갑습니다.’ 라고 손을 내 밀어 본능적인 불안감을 해소를 시켜 주어서 얼마나 다행인가하고 여자는 생각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얼마나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다 보인다.
버스가 멈춘 곳은 그럴듯하게 적막한 산중의 호젓한 식당이다. 남자와 여자가 도깨비 쌀뜨물을 앞에 두고 앉았다.
돌담사이로 찔레꽃 이파리가 떨어져 내리고 여자의 시선이 닿은 곳엔 적막뿐이다. 붉은 햇살도 눈 꺼플을 내리고, 강물조차도 눈을 감아버린 적막. 산 마져 덩치 큰 장승처럼 검고 길게 드러누워 버린 적막. 여자의 영혼도 적막이다. 실바람이 여자의 얼굴의 솜털을 일어서게 한다.
도깨비 쌀뜨물 몇 사발로 얼굴이 붉다. 갸름한 눈자위에 해실해실 눈웃음이 걸리고 고집스럽게 다물었던 입 꼬리가 살짝살짝 올라간다. 몇 순배의 술잔이 돌고 돌았다. 카~소리에 막혔던 속이 열리는 듯 시원하다.
세상의소리는 모두 적막의 소리일 뿐이다. 적막의 소리가 보이고 들린다. 백설 같은 찔레꽃 이파리 눈발처럼 흩어지고 뻐꾸기 울음소리 간간이 쿡쿠 쿡쿠 떨어지고 여자의 눈이 서러워진다.
여자의 몸에 가시는 어디로 갔을까?
도깨비 쌀뜨물이 뽀얗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