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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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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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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


BY 캐슬 2006-05-11

 

                                               불청객


                                                                       정 은영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그이와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버스를 타기 전 멀미약이 손에 쥐어졌다. 멀미약은 그를 내게서 잠시 멀어지게는 해 주지만 대신 졸음과 어지러움 증을 덤으로 주어 학교에 이르면 오전 내내 책상에 엎디어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오후가 되어 겨우 얼굴에 붉은 혈이 돌때쯤이면 다시 버스를 타야했으니 내 얼굴은 늘 잘 익은 탱자 같았다. 처음엔 차를 타지 않아서 그럴 거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께서도 두어 달이 지나도록 별반 달라지지 않는 딸의 고생에 걱정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견디다 못해 집의 절반 지점까지 걸어가는 친구를 따라 걷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친구와 함께 하는 동안은 힘들다거나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친구와 헤어지고 난 뒤 혼자 걷는 길은 멀고도 멀어 자신과의 길고 긴 외로운 싸움의 시작이 되고는 했다. 그저 앞만 보고 한없이 걷다보면 집이었고, 집은 곧 외로움의 끝이 되어, 마른 풀처럼 주저앉고는 했다.

‘ 병은 자랑해야 된다’ 하시며 이웃들에게 딸의 멀미를 재워줄 방법을 찾느라 엄마의 귀는 늘 열려 계셨다. 새로운 방법을 들으시게 된 날이면 ‘이번은 틀림없다’고 온갖 정성을 다하시고는 했다.

그때 해본 잊혀지지 않는 방법을 예로 들면, 집 마당의 깨끗한 흙을 손수건에 싸가지고 있다가 그가 나타나면 흙냄새를 맡는 것이 있었다. 

파스 방법도 있었다. 차를 타기 전 파스를 반으로 잘라 배꼽 위에 붙이는 것이었는데 이 두 민간요법은 잠간 동안의 효과는 있었지만 지속적인 효과가 없어 몇 번인가 하고 난후 그만 두어 버렸다. 다른 이들은 좋아졌다고 하는 것들이었지만 이상하게 나에겐 별 효과가 없는 것들뿐이었다.

딸의 차멀미를 보다 못한 아버지가 동네에서 제일 먼저 자동차를 구입하시는 하셨다. 아침이면 아버지의 자동차를 타고 학교를 가게 되어 친구들의 부러움은 샀었지만 내가 무엇보다 기뻤던 건 그와의 동행이 끝이 날수 있다는 희망의 시작 때문 이었다. 부모님의 정성 때문이었는지 마침내 여름이 방학이 끝날 무렵 그와의 동행이 소원대로 끝나는 날이 아주 천천히 나에게도 정말 오게 되었다.

봄꽃 이우는 창밖을 바라보는 여행길에 함께 가자며 그가 슬며시 무임승차를 했다. 오늘 하루 얼마나 힘들게 할런지 알 수 없어 마음을 단단히 동여맨다. 차멀미를 달래 보려고 오렌지의 껍질을 벗긴다. 축축한 과육이 손톱 밑으로 스며들고 쪽마다 맛이 다른 오렌지를 그가 좋아해주기를 바래본다. 울렁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허리를 반듯하게 하고, 고른 숨으로 긴장을 한다. 잠시 얌전하다가도 불쑥불쑥 나에게 애정을 과하게 표현하는 이 변덕스런 화상 때문에 버스가 서는 곳마다 내려서야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밝은 기분을 유지하려고도 해본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

내 노래 솜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신통한 반응이 없다.

멀미의 종류들을 생각해본다.  비행기 배 기차 버스 , 세상의 많은 멀미들에게 ‘그’라는 호칭대신 ‘불청객’이라는 이름표를 달아본다. 불청객이라는 이름을 달아주어도 억울하지 않을 것들이 어디 이들 멀미뿐이겠는가?

어디인가 숨어 있다 나타나고 사라지는 세상의 숱한 멀미라는 이름을 가진 불청객들은, 삶의 고비마다 나타난다. 삶의 멀미들은 순간순간 숱한 멀미의 모습으로 위장을 하고 자주 내 인생의 여정에 무임승차를 한다. 삶의 신열들은 끓어오르다가도 토악질 한 번으로 순간 자취 없이 사라져 줄 때도 있다. 여러 종류의 삶의 멀미들도 내성이 생겨 스스로 털어내고 이겨내게 되는 차멀미와 같았으면 좋겠다. 부딪치고 맞서서 강해지며, 두려움은 어리석은 인간의 나약함이라 큰소리쳐도 쳐 본다. 추울 때 오소소 돋는 소름처럼, 없어지고 편안해지면 곧잘 잊어버리는 차멀미처럼 삶의 멀미까지도 때로는 나에게는 그저 단순한 불청객이다.

차창 밖 봄을 느끼게 해주는 개나리가 노란 회초리처럼 담벼락을 후려치듯 피어있다. 순정만화를 좋아했고 동화 속 왕자님을 만나리라 꿈꾸었던 소녀였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소녀가 아닌 내 삶을 책임질 줄 알아야하는 나이이다. 삶을 조화롭게 운영하지 못해 때로는 불안해하며 긴장을 잃지 않으려 늘 애쓴다. 겉으로는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날지 몰라도 실은 나의 가장 비겁한 모습이다.

이럴 때면 나는 어김없이 멀미를 한다. 어떤 일에 자신의 전부를 바친다면 그것만으로 내 삶은 광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전부를 바치는 일, 하지만 어딘가에 잠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삶의 멀미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언제나 나 자신의 삶을 관객처럼 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지만 나는 이미 깊숙한 멀미의 가운데에 서 있을지도 모르니 내가 아닌 외부로부터의 어떤 도움도 없이 스스로 내 삶의 멀미들을 기꺼이 이겨낼 것이다.

한데 나는 아직 차멀미도 졸업하지 못했다.

한 분이 멀미에는 소주가 좋다며 잔을 내민다. 눈 딱 감고 받아 마셨다.

진즉 소주가 좋은 줄 알았으면 미리 마셔둘걸 그랬다. 소주 한 잔에 실없이 나오는 웃음 속으로 가뭇없이 떠나버릴 불청객을 생각한다.


차멀미보다 꽃 멀미가 더 하고 싶은 날이다. 

                                                                        4.26